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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4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분량에 비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읽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용이 평이하고 저자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써서 그런지 전문적인 내용은 적은 편이다.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거듭난 근본주의자에서 성경은 인간의 책이다, 라는 개방주의자로 돌아서게 됐는지를 밝히는 개인적인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나는 그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사실 뒷쪽에 나오는 구체적인 예는, 내가 보기에는 그저 소소한 오류들처럼 보인다.
그가 대학에서,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기술한 점에 대해 장황한 논문을 썼는데 (즉 성경의 저자를 보호하기 위해 온갖 사변적인 논리를 갖다 붙였는데) 교수가 한 마디로 논평했다고 한다.
"마가가 실수했겠지"
이 문장이 굉장히 통쾌했다.
그렇다.
성경의 저자들도 쓰는 과정에서 "실수" 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주제의식을 흐리게 하는 거대한 실수가 아니라 할지라도, 문장의 표기를 잘못한다거나 인명, 장소 등을 착각한다거나, 앞뒤 문맥 연결이 다소 모호하다거나, 등등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왜?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여지껏 교회에서는 성경무오류설이니, 축자영감설이니 하면서 인간의 손으로 썼으나 성령이 강림하여 하나님이 불러 주는대로 썼으니, 일획일점도 틀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그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 없는, 강팍하기 그지 없는 독선적인 주장을 들으면 정말 기독교에 대한 애정이 확 식는 기분이다.
경전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인이라면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단 1%의 사소한 오류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경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100% 완벽한, 단 하나의 실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책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수없이 발견되는 실수들에 대해 모두 나름의 변명을 갖다 붙이다 보면, 논리가 자꾸 꼬여 나중에는 말도 안 되는 어거지 주장을 하게 되니까.
이를테면 이른바 민족주의자라는 사람들도 그렇다.
삼국유사에 기원전 2333년 전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고 써 있다면서 조선 건국이 그 때 이뤄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국가의 건립은 청동기 시대에나 가능한 일인데 한반도의 청동기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이다.
정말로 고조선 건국이 기원전 2000여년 전에 이뤄졌다면,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처럼 고고학적인 발굴 증거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그래야 한민족도 당당하게 세계 4대 문명 안에 들어 가지 않겠는가?
대체 이덕일이라는 사람은, 어떤 고고학적 증거를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얘기가 살짝 옆으로 샜는데, 하여튼 성경도 일획일점이 틀림이 없는 그런 책이 아니라, 이미 저술될 때부터 오류가 존재했고 각자 자기만의 해석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지켜 봤으며, 전승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소한 오류들을 겪어 왔음이 분명하다.
필경사들의 필사 작업 과정의 오류는 차치하고서라도, 성경이 쓰여질 당시는 이미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1,2 백년이 흘렀을 시기다.
대체 누가 기억에 의존한 일을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눈에서 본 듯이 기록하겠는가?
같은 사건도 보는 사람에 따라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낳을 수 있는데 말이다.
여기 언급된 내용들은 따지고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소한 불일치와 오류들이다.
나는 성경 전체의 불완전성과 허술함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최고의 경전이며 예수의 부활과 구원을 증명하는 기독교인들의 지침서와 같다.
그러나 어떤 사소한 오류도 없다는 식의 성경무오류설은 곤란하다.
이런 태도는 너무나 위험하다.
세상이 7일만에 창조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도, 결국은 이런 축자영감설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단 하나의 글자도 틀림이 없다는 식의 주장은, 성경을 매우 비과학적이고 매우 고루한 경전으로 축소시킨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