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 - 페름기 말을 뒤흔든 진화사 최대의 도전 오파비니아 3
마이클 J. 벤턴 지음, 류운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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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리뷰에서 보고 읽고 싶었던 책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루트는,  일단 일간지의 북세션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신뢰 수준 높음) 두 번째는 인터넷 서점의 서평이다.
특히 나귀님처럼, 믿음이 가는 서재는 수시로 방문해 읽을 만한 책이 없나 살펴본다.
서점에서도 가끔 재밌는 책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횟수가 적은 편이다.
이 책은 TTB 리뷰를 통해 파도를 타다가, 우연히 이 책을 감수하신 분의 블로그에 들르게 되어 추천받았다.
<삼엽충>을 출판한 <뿌리와 이파리> 에서 나온 같은 시리즈물인데, <삼엽충> 보다 덜 자세하고 읽기도 쉬운 편이다.
<삼엽충>은 세부적인 기술이 너무 많아 결국 절반 정도 밖에 이해를 못한 채 덮고 말았는데, 이 책은 분량이 많으면서도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지구과학적인 부분, 그러니까 지질 연대나 화산 활동 같은 게 나오면 좀 헤매긴 했다.
확실히 나는 이런 부분에서는 약하다.

흔히 멸종 하면 6500만년 전의 공룡만 생각한다.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고, 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생물이다 보니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 보니 마치 멸종은 그 때 딱 한 번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번 <삼엽충>에서도 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보다 작은 규모의 멸종은 꾸준히 있어 왔다.
특히 바다의 지배자인 삼엽충은 일거에 쓸어버린 고생대 페름기 말의 대멸종은,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큰 참변으로 기록된다.
전체 종의 90%가 사라졌다고 하니, 얼마나 큰 재앙이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흔히 KT 사건이라고 부르는 백악기 말의 멸종은, 공룡을 포함한 50%의 종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공룡 멸종의 원인은, 운석 충돌로 확정이 된 모양이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렸을 때 열심히 읽은 공룡 관련 서적에서, 멸종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운석 충돌 같은 허무맹랑한 가설도 있다고 소개했었다.
그 때는 지구의 기온 하강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온갖 억측을 잠재우고 우주에서 날아온 지름 10km 의 거대 운석이 지구를 강타한 후 150km에 이르는 거대 운석구를 만들면서 뿜어내는 먼지 구름이 햇빛을 차단하고 대기의 성분을 변화시켰다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다소 허무하기도 하다.
과연 공룡은 왜 멸종했을까, 하는 미스테리 같은 분위기 때문에 더욱 공룡이 신비로워 보였는데 말이다.

아직까지 페름기의 대멸종 원인은 결론이 안 난 것 같다.
KT 사건처럼 외계에서 온 소행성 충돌 같은 이론도 있지만, 저자는 시베리아 트랩을 주원인으로 거론한다.
간단히 말해 거대한 화산 폭발이락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베수비오 화산처럼 한 번 폭발하는 게 아니라, 80만년의 시간을 두고 계속 폭발하면서 겹겹히 층이 쌓여 트랩을 이룬다.
이 때 먼지나 재, 이산화황 등이 대기로 유출되면서 햇빛을 막아 기온이 하강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산화탄소 등이 온실 효과를 일으켜 당시 지구의 온도는 무려 6도나 상승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찜통 같은 더위였을 것이다.
끔찍한 건기가 지속되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말라 죽어 간다.
또 산성비가 내려 토양을 쓸어 내려 식물들이 사라진다.
이 때 씻겨진 토양들은 바다를 오염시켜 무산소화를 촉진한다.
그러니 심해에서 산소 없이도 버티는 일부 완족류들만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네거티브 피드백을 통해 양을 조절하는데, 바다에서 메탄 가스가 분출하면서 오히려 포지티브 피드백을 형성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끝도 없이 증가한다.
생체 조절 시스템의 파괴라고 할까?
기온이 상승하면 극지방의 얼음이 녹게 되는데, 단순히 해수면만 올리는 게 아니라 메탄을 함유하고 있는 기체수화물을 방출하게 되는 게 이것을 메탄 트림이라고 표현했다.

페름기 말 대멸종은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생명계에 치명타를 입힌 경우라고 설명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을 인용해 재밌게 설명한다.
객실 안에서 승객이 살해당했는데 열 두 번 칼에 찔린다.
열차에 탄 승객은 모두 열 두 명, 그들은 서로 옆 사람의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알고 보니, 이들은 공모하여 지난 날 유아를 살해했던 그 승객을, 각자 한 번씩 열 두 번 찔러서 죽였던 것이다.
재밌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페름기의 대멸종은 KT 멸종처럼 운석 충돌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여러 번의 강타를 맞아 쓰러졌던 것이다.
이 때 또 문제가 됐던 것은, 당시 대륙이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베리아 트랩보다 더 큰 폭발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대륙 사이의 바다들이 그 충격을 흡수했다.
그러나 페름기 말의 초대륙은, 거대한 현무암질 용암 분출의 쿠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전체 종의 90% 멸종이라는 끔찍한 대참변을 낳게 된다.

지금은 이런 대변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저자가 지구과학을 배울 때만 해도, 점진주의가 대세였다고 한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동일 과정설 때문이다.
이 법칙은 지구과학의 기본 전제라고 매우 중요하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과거에도 현재와 같은 법칙에 의해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차이다.
오랫동안 동일과정설을 주장해 온 라이엘은, 현상 뿐 아니라 속도마저 현재와 같다는 점진주의를 지지한다.
반면 비교해부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퀴비에는 (이 사람도 수업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변화 속도의 급격함을 주장해 대멸종설을 지지한다.
간단히 말해 점진주의는, 공룡이 500만년에 걸쳐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이고 이 논리를 더 확장하자면, 탄생, 성장, 노쇠의 곡선대로 때가 됐으니까 사라졌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유전학과 진화론의 발달에 힘입어 이런 논의는 그저 사변적인 가설에 불과함이 밝혀졌다.
사실 모든 생명체가 번성하다가 정점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논리는, 관찰을 무시한 책상머리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과 과학의 차이가 이런데서 발생한다.
공룡이 후기로 갈수록 종의 다양성이나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일거에 멸종한 것은 대변혁 설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때가 되서 자연스럽게 퇴화한 것이 아니라, 운석 충돌이라는 기가 막힌 참변 때문에 잔혹하게 바뀐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것이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페름기의 대멸종을 이기고 살아남은 유일한 파충류가 리스트로사우르스인데, 한 방송 매체에서 이것을 진화상의 유리한 점으로 설명했으나, 즉 가장 우수한 형질이라 생존했다고 설명했으나, 사실 그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연히 바뀐 생태계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분량에 비해 가독성도 뛰어난 편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의 엄청난 사건들이 보다 많은 조명을 받아 대중들에게 알려짐으로써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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