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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 세계 3대 종교 발상지 중동의 역사를 읽는다 ㅣ 지도로 보는 시리즈
고야마 시게키 지음, 박소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은 퍽 끌리는데, 정통 학자가 쓴 책이 아니라 사실 좀 망설였다.
단순히 에피소드의 나열이나 확인되지도 않은 가십거리들로 책을 쓴거라면 차라리 안 읽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첫 부분이 의심스러웠다.
핑컬스타인이 쓴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를 먼저 읽고 내용에 상당히 공감해서인지, 모세 5경의 내용은 신화가 아닐까 이런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터였다.
그래서 장황하게 아브라함과 모세의 이동 경로나 생몰 연대를 추정하는 저자가 내심 못미더웠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주장인지, 고고학적 발굴 근거는 가지고 있는지, 단순히 성경 하나만 가지고 지껄이는 소리는 아닌지 등등 꽤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책을 읽어갔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저자와 책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일단 생존 인물로 규정하고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서인지, 앞서 읽은 책과 상당히 비교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근거를 밝히고 있고 무리한 설정은 하지 않아서 읽기가 수월했다.
비약이 심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우르에서 출발해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했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핑컬스타인은 나중에 삽입된 전설로 치부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 문명화된 부족이었다는 자부심을 갖기 위해, 마치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 역시 우리 조상은, 인류 최초의 도시인 우르가 고향이었다는 식으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일단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사실로 믿고, 그 근거를 역사책에서 찾는다.
대충 기원전 1900년 경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부족을 이끌로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왔다고 추정한다.
또 모세 이야기는, 이집트 제 18왕조의 람세스 2세 때로 추정한다.
핑컬스타인은 아예 모세 이야기는 없었던 일로 치부한다.
핑컬스타인은 고고학자이고 발굴단의 단장이었던 만큼 워낙 자세하고 세세한 근거들을 거론하고 있어 솔직히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는 전개라 비교적 그의 설명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일종의 분위기나 느낌을 가지고 모세를 람세스 2세 치세의 사람이라고 단정지은 이 책은, 좀 단순해 보인다.
뒷쪽으로 갈수록 중동의 역사는 자세하게 펼쳐진다.
특히 자신의 여행 경험과 적절하게 섞어 가면서 기술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흥미를 유지할 수 있어 좋았다.
제노비아 여왕이 대체 언제 사람인가 했더니 <팔미라> 라는 나라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성경에 나온 헤롯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다.
마카베오가 바로 헤롯 집안의 시조격이라고 한다.
중동 역사는 처음에는 하도 복잡해 전혀 감이 안 잡혔는데 반복해서 이 책 저 책을 읽으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인디애나 존스에 등장한 페트라는 나바테아의 수도였는데, 헤롯 왕가와 관련이 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여러 사슬들이 하나로 꿰어지는 기분이었다.
또 항상 이름만 알고 실체는 모호했던 리디아와 메디나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았다.
리디아는 현재 터키, 그러니까 아나톨리아에 세워졌던 고대 왕국이었고, 메디나는 현재 이란땅인 페르시아의 전신이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마치 주 나라와 은 나라처럼 메디나의 지방 영주 격이었다고 한다.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키루스 2세가 메디나와 리디아를 물리치고 메소포타미아의 거대한 왕국을 건설한다.
그의 손자가 그리스 가서 대패한 다리우스 1세다.
책에는 페르시아의 관점에서 바라본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 나온다.
영화로 만들어진 300의 전사들도 등장한다.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한 후 이 지역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의해 다스려지다가, 다음에 들어선 왕국이 파르티아이고, 그 다음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다.
파르티아도 당나라 역사 배울 때 얼핏 들었던 나라인데 왜 안식국으로 알려졌나 했더니, 파르티아 시조의 이름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 새롭게 많이 안 사실들이다.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에서 이야기가 끝이 나 아쉬운 감이 있다.
특히 에필로그가 없어 서운하다.
2부를 써도 좋을 것 같다.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이 정도의 수준있는 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 하다.
재밌게 읽었고 상당히 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