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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만의 표적 - 초특가판
샘 페킨파 감독, 더스틴 호프만 출연 / 영상프라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젊은 시절의 더스틴 호프만을 만난 건 좋은 영화의 보너스 같다.
같이 나오는 여배우는 매우 육감적이고 머리가 비어 보이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를 잘 소화해 낸다.
영국이라는 공간은 헐리우드와는 매우 달라 보인다.
똑같은 영어를 쓰는데 도 전혀 다른 공간 같다.
껄렁껄렁한 악당들로 나오는 다섯 명의 건달패들은 폭력적인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마치 비틀즈 멤버들을 보는 것처럼 아주 전형적인 영국 청년들로 보인다.
바지가 어찌나 짧은지, 거기다가 운동화까지 신고 머리는 장발인 마치 60년대 패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언제 제작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60년대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더스틴 호프만은 여리고 섬세한 미국인 수학자를 잘 표현해 낸다.
이 사람은 정말 연기의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잘 잡아낸다.
내가 남들에게 할 말 잘 못하고 사는 성격이라 그런지, 건달패들을 향해 항의하고 싶으나 못하는 그 머뭇거리는 장면이 어찌나 실감나던지, 완전히 이 배우에게 확 빠져 버렸다.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던 부분도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하는 장면이었다.
한국 영화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면 십중팔구는 팜므파탈처럼 도발적이고 난잡한 캐릭터일 것이다.
착하고 얌전하며 순진하기까지 한 주인공이 과연 담배를 피운다고 설정될 수 있을까?
어떤 나라나 문화권이든 터부시 되는 비합리적인 금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하여튼 남자들에게만 열려 있는 기호 선택의 자유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내가 인상깊게 본 부분은 강간 장면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에이미의 도발적인 행동들이 못마땅 했다.
처녀 시절 만나던 껄렁패들을 차고 고치는데 고용한 것도 이상하지만, 노골적인 눈빛으로 불쾌한 시선을 던지는 이 양아치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윗몸을 벗어 제끼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더군다나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온 옛 남자 친구가 거침 숨소리를 내면서 찾아 오자 내보내기는 커녕, 오히려 술까지 권하는 행동은, 아예 날 잡아 잡수라는 노골적인 행위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 같은 강간 행위가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창녀 같은 여자라도 원하지 않은 성행위는 절대로 즐거움이 될 수 없다.
대체 남자들은 상대가 죽을 것처럼 반항을 하는데도 일단 삽입을 하면 쾌감을 얻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강간 당하는 에이미의 고통이 너무나 리얼하고 끔찍하게 잘 묘사되어 간담이 서늘했다.
폭력으로 그녀를 제압하는 제임스가 악마처럼 보였다.
한 술 더 떠 그 패거리 중 한 놈이 찾아와 연이어 강간하는 걸 보고, 육체적으로 약한 여자가 그동안 사회에서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힘과 폭력성만이 권력관계를 만드는 사회, 확실히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전 사회는 약자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으리라.
끔찍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마을에는 절름발이 정신지체자가 있다.
어린 소녀가 그를 성적으로 유혹한다.
어른들에게 거부당하자 자기가 만만하게 유혹할 수 있는 헨리를 건든다.
어린 소녀가 정말 도발적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사람들에게 발각당할 위험에 처하자 당황한 나머지 헨리가 제니스를 목졸라 죽여 버린다.
절름발이가 착할 거라는 편견을 버리라는 니체의 명언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또 헨리는 쫓기는 자신을 숨겨 준 에이미 마저 강간하려고 덤빈다.
지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고 욕정에 자신을 맡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건의 반전은 제니스를 죽인 헨리를, 마을 건달패들이 찾으러 더스틴 호프만의 집으로 몰려 오면서부터다.
운전하다가 헨리를 치게 된 호프만은, 총을 들고 위협하는 그들에게 절대로 헨리를 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소심하던 호프만이 분노한다.
부당한 폭력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 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힘없는 사람도 진정으로 분노하면 무서워진다.
호프만은 그들의 폭력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헨리를 결코 내주지 않는다.
그들이 집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모습은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하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결국은 주인공이 이기는 식으로 다섯 명은 다 죽고 만다.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약간 작위적이긴 했지만, 부당한 폭력에 분노하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정의가 승리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정작 헨리가 제니스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되면 주인공의 기분은 어떨까?
혹은 헨리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했다면?
자기 딸을 강간한 후 죽였다면?
어디까지 정의가 혹은 균형감각이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DVD 소개서에 어찌나 형편없이 줄거리가 나왔던지 짜증났다.
제대로 영화를 보기나 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