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만드는 사람 - 근대 초 영국의 국토.역사.정체성, 역사도서관 006 역사도서관 6
설혜심 지음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 읽을 때는 너무 지루하고 지엽적인 내용이 많은 것 같아 대체 내가 영국 지도 역사를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내가 도서관에 신간 신청한 책이라 아까워서 억지로 읽기는 했지만 정말 대충 넘기는데 치중했다.
한 번 다 읽고 나니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정리라도 할 생각으로 다시 앞에서부터 차분히 읽었더니, 이번에는 정말 눈에 쏙쏙 잘 들어 왔다.
왜 처음에 읽을 때는 재미가 없었을까?
아마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던 18,19세기 무렵이다.
헨리 8세에 대해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천일의 앤 같은 스캔들이 전부였다.
그러니 16세기 절대주의가 확립되어 가던 시기의 내용이 낯설 수 밖에.
이번에 새롭게 느낀 것은, 역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책을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기 때문에 즐기지도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무척 재밌고 영국의 근세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잡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마치 중세처럼 인식되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시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전기 쯤 된다.
그러니까 상당히 가까운 시대였다는 얘기다.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의 장미 전쟁이 끝난 후 헨리 7세가 즉위하면서 영국은 중세에서 빠져 나온다.
아들 헨리 8세가 즉위한 후 영국은 수장령을 통해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는데, 이 때부터 로마로부터 단절된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체성 확립이 요구된다.
저자는 지도와 역사책이 바로 이 정체성 확립의 상징 체계로 쓰였다는 점을 지목한다.

항해 시대를 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우, 그들의 탐험에 의해 발견된 곳을 기록한 지도는 외부 유출이 금지됐다.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영국의 드레이크는 세계 일주를 계획하면서 지도를 구입하기 위해 리스본까지 직접 날아갔다고 한다.
반면에 영국의 지도 출판은 상업 출판이 대세였다.
이 점이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과 매우 다른 점인데, 영국은 지도를 통해 국민들이 브리튼 섬을 하나의 정치 단위로 인식하기를 원했다.
특히 예전에는 교구를 자연 경계로 인식했던 데 반해, 지도가 보급된 후부터는 지도에 표기된 대로 주를 정치적 경계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이고,  특히 중세 봉건 시대를 지난지 얼마 안 됐을 시기니, 평생 영주의 성 주변 영토를 떠나 본 일이 없는 농민들로서는, 국가나 국토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처럼 TV 나 신문이 있는 시절도 아니었으니 대체 브리튼 섬이란 어떤 곳인지, 내가 속한 곳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도가 만들어지면서 영국인은 지도에 그려진 주를 일상 생활의 공간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색스턴의 지도는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독점계약을 맺어 집집마다 걸려 있었다고 한다.
비단 영국인만 그런 것은 아니고, 대육에서도 항해의 결과물로 얻게 되는 점점 확장된 지도들로 실내를 장식했다.
바티칸 궁이나 베로키오 궁에는 지도의 회랑이라는 곳이 생긴다.
영국은 지도의 상업 출판이 활발해 대륙이 지도자들만 지도를 소유했던 데 비해, 영국은 일반 국민들까지 일상적으로 지도를 접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색스턴이나 존 스피드가 만든 지도를 보면 마치 예술 작품처럼 매우 화려하다.
단순히 통치나 행정의 개념으로만 쓰인 게 아니라 지도 자체가 하나의 장식품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대항해 시대 이후 외부로 팽창하는 유럽의 분위기나 힘을 느끼게 된다.
쇄국 정책을 고수하던 조선에서 지도가 일반화 되지 못한 것과 비교가 된다.
대원군에게 고문받아 죽었다는 김정호의 전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지도 제작에 대한 당시 인식은 어떤 것인지 정확한 배경을 알고 싶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지막의 여행기에 대한 분석이었다.
유럽의 여행 문화는 그랜드 투어라는 형태로 16세기부터 형성된 오래된 전통임을 확인했다.
이미 자국의 문화나 역사, 지리서 등을 편찬한 영국은 외국인이 방문했을 때 자신들을 소개할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륙인들은 영국인이 편찬한 역사지지서 등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일종의 기준이 존재했다고 해야 할까?
요즘 같으면 가이드 투어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미 영국 하면 떠오르는 기본적인 이미지와 인상이 형성되어 있었고 영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여행기도 기존의 인상과 맞는지 틀린지를 논평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객관적이거나 독창적인 관점을 얻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우리의 배낭 여행이 흔히 그렇듯, 16세기 그랜드 투어도 역시 정해진 루트만 돌게 된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방문한 후 쓰는 여행기가 과연 얼마나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외국은 이렇더라, 하고 쉽게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그 나라의 분위기기 국민의 기질 등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편견만 키운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 나오는 여행기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학생 아내들의 여행기 수준의 책으로 미국이나 기타 유럽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비슷한 내용이 매 장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조금만 집중해서 읽으면 책의 주제를 금방 인식할 수 있다.
그만큼 쉽게 써지기도 했고 또 그 때문에 책의 수준이 아주 높은 것도 아니다.
대중들을 상대로 평이하게 영국의 절대주의 시절 지도 제작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워낙 한정된 시대의 한정된 공간에 국한된 지엽적인 얘기라 자칫, 내가 이 얘기를 꼭 알아야 하나, 이런 회의감이 들 수 있지만 어쨌든 한 권을 읽고 나니 영국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잡히는 기분이다.
더불어 지도에 대한 관심도 늘게 됐다.
지리학 교과서에서 보면 메르카르트 도법이 발명자 이름을 딴 사실이란 걸 알게 되는, 자잘한 기쁨들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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