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안인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주문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얼른 집어 들었다.
책이 워낙 두꺼워 한 번에 다 읽지는 못했다.
힐러리의 <살아있는 역사> 라든가, 빌 클린턴의 <My Life> 같은 자서전도 만만치 않은 두께를 자랑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의 전기나 자서전은 대체적으로 분량을 길게 잡는 것 같다.
처음에는 소설책 읽듯 재밌게 읽어나갔다.
그렇지만 학문적인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지루해짐을 참기 힘들었다.
저자가 한 인물에 대해 뼛속까지 파고 들겠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또 부록을 보면 언제 어디서 그 에피소드가 나왔는지 출처를 밝히고 있다.
대충 쓴 전기가 아니다.
칼 세이건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가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이덕희가 쓴 <전혜린 이야기> 와는 느낌이 아주 다른 책이다.
이덕희의 책에서는, 일화 중심적이고 막연히 찬양하는 기분을 받았는데 이 책은 꽤 시니컬 하고 무엇보다 객관성을 잃지 않아서 좋다.
예비 조사를 꽤 성실하게 한 것 같다.

달에 생명체가 살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우주인들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귀환했을 때, 바다에 떨어뜨린 후 컨베이너 박스 같은 곳에 집어 넣어 철저하게 살균을 한 후 내보냈다는 이야기는 지금 생각하면 코메디 같다.
달의 미생물이나 박테리아 같은 게 지구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달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살균 처리를 얼마나 완벽하게 하느냐로 소련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달이든 화성이든 생명체가 없음이 명백해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웃기는 얘기인데, 우주의 생명체를 믿었던 세이건으로서는 이런 오염 문제에 누구보다 민감해 철저한 격리를 시행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우주에 쓰는 돈은 허공에 날릴 수도 있는 돈이지만, 그렇다고 그 돈을 반드시 사회복지 같은 유용한 데 쓴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보면, 세이건의 말마따나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미지의 신호를 찾는데 투자하는 것도 충분히 의의가 있을 것 같다.

책을 쓰고 TV에 나오면서 세이건은 유명인사가 됐지만, 반대로 학계에서는 세이건의 활동폭이 좁아졌다.
하루 종일 촬영을 하면서 논문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책에 나온 재밌는 표현대로, 노벨상을 받으면 정말로 은퇴할 수 있지만, 퓰리처상을 받으면 계속 책을 써내야 한다.
상금이 겨우 천 달러 불과하니 다소 놀랍다.
확실히 세이건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다.
TV 시리즈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가 쓴 책을 보면 위트 있는 문장을 구사한다.
무엇보다 정통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면이 마음에 든다.
학자로서 출중한 위치를 갖지는 못했더라도 대중의 과학화에 앞장설 과학저술가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부인 린 마굴리스는 그녀 자신이 미토콘드리아 공생설을 발표할 정도로 똑똑하다 보니 언제나 주목받기를 원하는 세이건과 함께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부인 린다는 화가였는데 무척 정열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닉을 낳은 후 어처구니 없게도 자기 책의 출판업자 약혼자와 눈이 맞아 파탄난다.
어쨌든 단순히 바람 피우는 데 그치지 않고 애니와 결혼했다는 점에서는 세이건의 순수함이 엿보인다.
가정을 깨는 게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게 이중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애니와 세이건은 무척 죽이 잘 맞아서 환상적인 커플십을 자랑한다.
세이건은 명성과 부가 있었고 앤은 젊고 아름다웠다.
세이건의 아버지는 폐암으로 죽고 어머니는 췌장암으로 죽었으며 세이건은 골수이형성증으로 60대 초반의 아까운 나이로 사망한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MDS를 직접 보니, 다소 으스스했다.
여동생 캐리가 골수이식한 보람도 없이, 노벨 의학상을 받은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죽고 만다.
실험실에서 노출된 방사선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다른 연구원은 이상이 없었다.
젊은 시절에는 식도이형성증으로 거의 죽을 뻔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의사에 대한 불신도 상당했던지, 어떤 치료든 정신과 의사인 친구의 자문 없이는 절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약간의 편집증이 있었다고 한다.
하긴 외계생명체에 대한 그의 놀라운 탐구와 열정도 크게 보면 일종의 편집증 내지는 건전한 집착일 수 있다.

대중 시대다 보니 과학계도 스타를 원하는 것 같다.
명실상부 하기란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칼 세이건 정도면 훌륭한 스타라고 생각한다.
금성의 온실효과도 그가 처음 주장했다고 하고, 외계의 신호를 잡아 내는 SETI 프로그램도 주도했으니 나름 기여한 바도 크다.
무엇보다 과학저술가로서 그의 업적은 크게 평가받아야 할 것 같다.
신경학자들이 삐딱한 시선으로 본 <에덴의 용> 은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긴 하지만 다소 비약도 있지 않았나 싶었는데 역시 비전문가가 쓴 책이다 보니 학계에서 100%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대중을 위한 신경학자들의 분발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코스모스> 나 <창백하고 푸른 점> 혹은 <혜성> 은 아직 안 읽어 봤다.
천문학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에필로그> 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은 참 재밌게 읽었다.
회의주의야 말로 모든 과학자의 가장 기본적인 심성이 아닐까 싶다.

분량이 너무 많아 한 번에 읽기는 부담스럽지만 지하철에서 조금씩 즐겁게 읽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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