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 중국사의 흥망을 읽는 새로운 시각
니시노 히로요시 지음, 김석희 옮김 / 북북서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간단하고 평이하게 서술되어 쉽게 넘어가기는 한데, 일본책 특유의 강박관념이나 조잡함을 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에서 출판된 자기계발서 같은 걸 보면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몰고 간다거나 한쪽만 물고 늘어진다는, 세부사항에 너무 집착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책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유목민족의 말에 대해 다룬 것은 좋은 시도였기는 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힘이 부족하고, 말, 황하, 만리장성이라는 세 가지 지엽적인 부분에만 너무 집착해 역사의 큰 틀로서 중국사를 조망하기는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세부사항에 너무 매달려 있는 것 같아 혹시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인이지 않나 싶어 약력을 확인했는데 전공자가 맞긴 하다.

유목민족에 대한 인식을 깨우쳐 줬다는 점에서는 신선했다.
중앙 아시아로 통칭되는 그 초원에 대체 어떤 민족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대체 누군지 늘 모호했는데 비로소 그 실체는 보는 기분이다.
동북아시아라고 하면 흔히 한, 중, 일 세 나라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이 세 나라만이 오늘날 국가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렇지 이른바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하는 다른 민족들도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티벳이나 몽골족, 거란족, 여진족, 선비족, 투르크 계열 등등 많은 유목민족이 등장하고 또 그들이 세운 유목국가들이 소개된다.
몽골이 세계를 재패하는데 있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무겁게 중장비로 무장한 유럽 기사들과는 달리, 가벼운 경장비로 무게를 최소화 한 채 수십 마일을 달려 전장을 누비는 유목민들은, 전술부터 워낙 달라서 속절없이 당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목민은 숲이 우거진 삼림이나 강을 건너야 하는 좁은 지역은 피했고 평원에서 적을 끌어낸 후 싸웠다고 한다.
기동성 면에서는 따를 자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몽골의 낙후가 안타깝기 그지 없을 정도로, 그들의 전투 기술은 참으로 출중했다.

만리장성은 유목민족이 말을 타고 넘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방비책으로 세웠다고 한다.
아무래도 성벽이 둘러싸고 있으면 안으로 들어 오기 힘들었을 것이고, 들어온 후에는 나가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유럽이 도시를 성벽으로 둘러 쌌던 것처럼, 중국은 아예 북쪽 전 영토를 벽으로 빙 둘러 싸 버렸으니, 가히 스케일 큰 중국인 답다.
만리장성이나 수나라의 대운하 등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짰다는 원성을 산데 비해, 그것으로 얻게 되는 이득은 엄청났다.
유목민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했을 뿐더러, 남북을 잇는 교통로로 대운하는 큰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정치가들이 단순히 잔인하고 무자비하지만은 않다.
치수를 잘 하는 사람이 천자가 된다는 말뜻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황하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강인지, 중국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한 지형 같은 건 대충 넘어갔지만 하여튼 분명하게 각인은 됐다.
황하야 말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나 싶다.

이번 여름에 중국을 여행하려고 하는데 만리장성과 황하 등을 직접 보면 역사책을 읽을 때 좀 더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만리장성을 판축공법으로 지었다는데 대체 그게 어떤 건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중국사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로 크고 위대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하나의 민족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 거대한 국가를 유지해 왔다는 것도 놀랍고, 비록 공산주의 혁명으로 세계경제에서 뒤쳐지긴 했지만 언젠가는 정말 새로운 강자로 군림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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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8-03-30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번 올림픽때 중국 가시는 거에요? 저는 5월달에 홍콩에 가야하는데, 겸사겸사 중국 서남부(사천성,운남성) 쪽 가보고 올까 막연하게 생각중이랍니다. 대학때 40일간 중국여행했었는데, 만리장성 보러간날 하필 안개가 너무 자욱히 껴서 바로 앞부분밖에 안 보였어요. ㅠㅠ 마린님은 좋은 날씨 만나시길. ^^

marine 2008-03-3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님, 반가워요. 여행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전 올림픽 때는 사람 많아서 못 갈 것 같구요, 끝난 다음에 8월 말쯤에 갈까 싶어요. 일본 여행 사진도 잘 봤습니다. 채린이가 많이 컸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