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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 [초특가판]
더글라스 서크 감독, 제인 와이먼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평점 :
정말 잘 된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전개도 억지스럽지 않아 좋았다.
록 허드슨이라는 배우는 대단한 미남 배우라고 하는데 (50년대를 대표한다고) 사실 난 썩 잘 생겼다는 생각은 안 든다.
처음에는 실버스타 스탤론의 젊은 시절인가 착각했었고 (근육질이 워낙 발달해서) 나중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인가도 했다.
록 허드슨이라는 이름이 왠지 락커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에서도 캐리가 론의 근육질에 반했냐는 비난이 나오는데 난 오히려 근육이 너무 발달한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난 꽃미남의 가냘픈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캐리 역을 맡은 제인 위먼은 무척이나 고상한 상류층 귀부인으로 나온다.
점잖고 품위있고 날씬한 고상한 여자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지나치게 짧은 치마 보다는 영화 속의 캐리처럼 기품있는 정장 차림이 더 마음에 든다.
오히려 딸로 나오는 젊은 여배우의 패션이 더 촌스럽다.
무척 날씬하고 조그마한 여자인데, 거구의 미식축구 선수가 키스하면서 감탄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작은 사람이 이렇게도 매력적이라니!
정원사와 주인집 여자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영화에서조차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참 이상한게, <타이타닉> 에서는 3등석의 디캐프리오와 1등석의 케이트 윈슬렛의 사랑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데 말이다.
둘 다 젊은 사람이라서 그런건가?
아니면 이 영화가 훨씬 더 리얼리티가 있어서인가?
나이차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요즘 <아현동 마님>에서도 열 두 살 차이 나는 커플이 등장하지만, 영화 속의 캐리는 정원사 론보다 열 다섯 살이 많다.
실제로도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인다.
그렇지만 자연스럽다.
기품있고 고상해 보이는 느낌 때문일까?
젊은 여자와 중년 신사의 사랑 보다도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실에서라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내가 우리집에 전기 고치러 온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정원사를 고용할 정도로 부자가 아니라서 전기 수리공으로 상상해 본다.
하여튼 분명히 사회에서 말하는 신분 격차는 존재한다.
관습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열 다섯 살의 나이차는 오히려 경제적 격차에 가리워져서인지 아니면 미국은 나이차에 덜 민감해서인지 주된 화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 된 영화라 덜 자극적인 것일 수도 있다.
가난한 여자와 부자 남자의 결합은 아름다워 보이는데, 가난한 남자와 부자 여자의 결합은 왠지 위태롭다.
아무래도 여자가 사회적으로 자기 것을 지키기 어려운 약자이기 때문일까?
캐리의 재혼을 반대하던 아이들은, 결국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나버리고 혼자 남은 엄마에게 텔레비전을 선물한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혼자 남은 중년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TV 뿐인 것 같다.
TV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그 외로움을 두드러지게 한다.
자식도 결국은 제 인생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캐리는 그때서야 자신의 행복을 찾으러 떠난다.
이런 걸 보면 인생은 각자 열심히 자신의 행복을 찾아 사는 것인가 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건, 그 희생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면 공허해진다.
캐리의 친구인 새라는 그래도 자식이 있는 캐리를 부러워 한다.
"그래도 넌 클럽이나 칵테일 파티를 전전하지는 않아도 되잖니"
자식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하지도 못하고 괴로워 하지만 자식 없는 부부가 노년에 마음 붙일 곳은 공허한 파티 뿐이다.
자식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 같다.
친구가 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하여튼...
연애만 하려는 캐리에게 론은 당신은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가에 나 역시 회의적이지만, 어쨌든 결혼이 연애보다는 좀 더 책임있는 행동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바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약속을 하고 평생을 함께 서로에게 신의를 지키고 산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 일부일처제와 맞지 않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무척이나 중요하고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어쩌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결혼의 의미가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내용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