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오파비니아 4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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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난 이 책의 절반도 이해를 못한 것 같다.
가볍게 생각하고 집어든 게 화근이었다.
어렵다.
생각보다 어렵다.
차라리 공룡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좀 더 쉽게 이해를 했을 것 같다.
어쨌든 공룡은 많이 알려진 동물이고 무엇보다 큼직큼직 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이 놈의 삼엽충들은 어찌나 작은지 아무리 저자가 수십 만종의 삼엽충이 있다고 열을 내도 내 눈에는 다 똑같이 보인다.
그저 괴상한 갑각류로 밖에는 안 보인다는 얘기다.
감별이 안 된다.
시각적으로 식별이 안 되니 다 거기서 거긴 것 같고 흥미를 끌어 낼 수가 없다.
지구를 3억년이나 지배했다는 이 놀라운 생물들의 비밀이 아무리 많이 밝혀진다 해도 공룡처럼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아무리 귀여운 벌레가 있다고 해도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들에게 사랑받는 애완견의 위치는 차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삼엽충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너무 특이해 항상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주 간단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세 개의 엽을 가진 벌레라는 뜻이다.
기막힌다.
이러니 잘 안 쓰는 한자어를 모으면 기묘한 이미지로 바뀌어 버린다.
세 개의 엽, 즉 머리부, 가슴부, 꼬리부가 그것이다.
머리, 가슴, 배로 나뉜다는 곤충과 똑같다.
곤충류와 삼엽충류는 똑같은 절지동물에 속한다.
인간은 어류와 기원이 같은 척추동물이다.
관절다리가 있는 절지동물,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
정말 간단한 분류다.
척추동물과 절지동물의 공통점은?
그런 게 있기는 할까?
놀랍게도 우리들은 눈을 가지고 있다!
삼엽충과 곤충과 인간의 공통 조상은 등뼈나 관절다리는 몰라도 적어도 눈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이다.
빛을 인지하는 시각 기관의 발달이 절지동물에게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니!
사실 이 부분은 아직 안 읽은 부분이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소개되서 반가웠다.
도킨스는 점진적 진화를 주장한다는데 적어도 고생물 쪽에서는 갑작스런 진화가 맞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고리는 원래부터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단속평형설에 따르면 중간 고리, 즉 새로운 종으로 변화하는 전이 단계를 지닌 생물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존재하고 곧 우세종의 확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을 시간이 없다.
고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진화를 뒷받침 하는 증거가 되버렸다.
바다 속 지층에 매장된 삼엽충의 화석은 점진적 진화 단계를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화석이라고 한다.
산소 대신 황결합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내는 특이한 황세균에 의해 부패가 방지되고 전이 과정이 화석에 기록됐다고 했는데 너무 세부적인 내용이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여튼 삼엽충의 집합복안도 그렇고 이 놈들이 진화의 신비를 밝히는데, 마치 유전자 지도 작성에 초파리가 엄청난 수훈을 세웠듯,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공룡이 나타나기 전에 멸종해 버린 가엾은 삼엽충은 말 그대로 고생대를 대표하는 표준화석이고 삼엽충의 특정 종이 고생대의 특정시기를 가리키는 이른바 화석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신생대에서 공룡 화석이 나타나지 않듯, 혹은 티라노사우르스가 보이면 백악기 지층이듯, 삼엽충이 나타난 지층은 반드시 고생대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삼엽충 고생대, 공룡 중생대 하고 외웠던 것 같다.
무려 3억년을 지배했다는 데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살았다.
그 정도 생존했다면 멸종한 게 크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구의 환경 변화는 생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러나 낙관적으로 보자면 멸종을 통해 진화의 역사는 새로운 종을 창조해 내므로써 우리의 생태계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지구의 신비를 생각해 보면, 가이아 이론을 신봉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엽충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열 네 살 때 우연히 삼엽충 화석을 발견한 뒤 평생 직업으로 삼은 이 학자는, 책에서 정말 놀라운 애정을 내뿜는다.
책에 소개된 위대한 삼엽충 학자들의 열정을 보면, 누가 감히 과학자를 메마르고 냉정한 감성의 소유자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끈기를 가진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과 과학의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같다.
과학은 예술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과학 역시 예술이고 인문학이다.
통섭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근면과 끈기가 남다를 뿐이다.
취미와 직업을 일치할 수 있는 이 행복한 남자의 책은, 그러나 좀 지루하긴 하다.
워낙 삼엽충이 덜 알려진 분야라 자세한 소개 부위가 지루한 점도 있지만 분명히 위트있는 문장인데도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가 아주 재밌지가 않았다.
어쨌든 자연사 박물관에서 삼엽충의 학명 붙이는 직업을 가진 이 남자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고생물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야겠다.
빼먹지 말고 기록할 것은, 삼엽충이 가재나 게 같은 갑각류가 아니라 투구게와 비슷한 친척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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