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닉 혼비라면 "About a boy" 를 쓴 작가가 아닌가?
그 영화를 워낙 재밌게 봤기 때문에 이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
더군다나 알라딘에서 읽은 리뷰가 맛깔스러워 꽤나 기대를 하고 집어든 책이건만...
역시 내가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너무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농구 얘기를 하면 더 나을 것 같다.
축구에 관한 얘기라면 이 책 보다는 서형욱이 쓴 "유럽축구기행" 이 훨씬 흥미롭다.
팬에 관한 얘기라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 더 나을 것 같고.
하여튼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지루하고 심심했다.
외국 사람이 쓴 에세이라 그런지 문장이 와 닿지가 않았다.
그래도 조지 오웰의 소설은 마음에 콕콕 박히는 유머가 있잖아.
아, 왜 이렇게 실망스러운 거야...

 

이 책의 장점을 굳이 들자면, 내 소녀 시절의 열정을 추억하게 만든 걸 꼽겠다.
나는 언젠가 이런 책이 나오리라 기대하는데, 한창 아마추어 농구가 유행할 때 현대와 기아가 라이벌 관계일 때 나는 언제나 만년 2위인 현대를 응원했다.
이충희의 전성기가 지나고 허재와 김유택, 강동희 등이 한창 날리고 있을 때 한물 간 이충희나 이원우가 있는 현대 농구단의 광팬이었다.
그 때만 해도 서울에서만 경기가 있을 때라 지방에 살던 나는 직접 관람도 못하고 TV로만 중계 방송을 봤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했으면 팬클럽에라도 들텐데 그 때는 고작해야 스포츠 신문에서 기사 한귀퉁이 얻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렇게 수집한 신문 기사가 노트 한 권은 족히 넘었으니 나름 꽤나 애정을 갖고 팬 노릇을 했다.
남들은 죄다 기아를 응원하고 응원한 팀이 이겨 승리를 만끽하는데 나는 항상 그 팀에 패배하는, 꼭 기아의 밥 같은 현대만 응원하고 패배에 몸을 떨어야 하는 처지였으니, 어떻게 보면 닉 혼비가 아스날을 응원할 때의 그 열패감을 나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나중에 연세대가 한창 끗발을 날릴 때도 나는 이상하게 연대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고려대를 응원했다.
죄다 이상민이나 문경은, 서장훈, 우지원 같은 연세대 스타들을 환호하는데도 나는 이상하게 고려대의 김병철이나 전희철, 현주엽 같은 스타성이 다소 부족한 선수들이 더 좋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선수들의 주소, 이원우는 노원구 상계동에 살았고, 현주엽이 사는 아파트 이름은 개나리 아파트였다.
나는 원체 마이너 기질을 타고난 모양이다.
나의 우상은 현대팀의 이충희도 아니고 늘 이충희에게 가려 빛을 못 본 비운의 가드 이원우였다.
이 사람은 결국 은퇴 후에 인간극장에 나올 정도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불행하게도 뇌종양에 걸려 세 번의 수술 끝에 사망하고 말았다.
유명한 농구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국가 대표까지 지냈다) 언론의 주목도 못 받고, 하필 죽을 때가 허재 은퇴하는 날이라 정말 언론의 한 줄 기사거리도 못 되고 쓸쓸하게 사라졌다.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하여튼 내 중고시절은 닉 혼비가 아스날과 함께 성장한 것처럼 나도 현대 농구팀과 함께 자랐다.
그렇지만 그가 느낀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의미와는 매우 다르다.
요즘 10대 소녀들이 열광하는 그런 팬문화도 아닌 것 같고, 집단의 문화를 공유하기 위한 그런 제스처도 아니었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꽂힌, 그런 취미와 비슷했다.
마치 지금 내가 책을 좋아하듯 나는 현대 농구팀을 사랑했다.
용병들이 등장하고 무지막지하게 덩크슛을 꽂아대는 프로농구는 내 취향이 아니다.
차라리 나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신체접촉 없이 깔끔하게 스파이크를 내리꽂는 배구가 훨씬 좋다.
아니면 이충희나 이원우가 3점슛 라인에 서서 슛을 던지는 그런 아기자기한 실업농구가 더 좋다.
이원우의 죽음, 언젠가 꼴지팀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소설로 부활할 날이 있지 않을까?
그의 딸 이름이 이혜민이었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들 현수도 농구선수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인간극장에 나온 이원우 선수의 형도 키가 컸던 기억이 난다.
아,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신해철이 영국 갔다 온 다음에 영국인은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축구를 사랑하고 즐긴다는 말을 했었다.
한 때 신해철의 팬이긴 했으나 요즘의 그 언론플레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하여튼 그 말의 의미를,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해한 느낌이 든다.
영국인에게 축구란 닉 혼비의 절묘한 표현처럼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월드컵 4강이 국력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외국 경기에서의 승리를 열망하는 한국 축구 문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같다.
단순히 축구 선진국이나 종주국 같은 간단한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것 같다.

 

이혼 문제가 얽혀 있어서 그 부분을 읽을 때는 마음이 찌릿했다.
프랑스 여자를 따라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사춘기의 아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할 수 있는 놀이가 대체 뭐가 있겠는가?
축구 관람이란 얼마나 시의적절한 놀이였을까?
닉 혼비의 넋두리처럼 어색한 부자간에 함께 할 수 있는 문화가 참 부족하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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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현 2014-11-06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