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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히로시마 - [초특가판]
엘레인 레스네 감독, 엠마뉴엘 리바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평점 :
1950년대의 영화를 2008년에 본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다.
1959년에 만들어진 영화니, 벌써 50년이나 지난 영화가 아닌가!
솔직히 재밌지는 않았다.
다만 독특하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저 그렇고 그런 헐리우드식 시간 때우기 영화가 아니라, 개성이 있고 감독이 하고 싶어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무엇보다 배경이나 분위기가 고혹적이다.
이게 흑백 영화의 혹은 프랑스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여배우 엠마누엘 리바는 적어도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은 돼 보이는데 꽤나 매력적이다.
<남과 여>에서 나왔던 아누크 에메처럼 고혹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분위기가 참 좋았다.
눈가의 주름도 나이를 곱게 먹은 흔적 같아서 아름다웠고 단발 머리가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잘 어울렸다.
또 허리는 어찌나 날씬한지, 동여맨 벨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그 밑의 아랫배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요컨대 50년대의 마른 체형 여자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잘 못 먹고 살던 그 때는 아마 대부분 저렇게 날씬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 오카다 에이지에 대해 말하자면, 요즘 한창 뜨는 다니엘 헤니가 중년이 되면 저렇게 늙지 않을까 싶을 만큼 멋지다.
일본 남자는 키가 작고 체격이 조그맣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일시에 날려 준 영화다.
키도 훤칠하고 정말 잘 생겼다.
오히려 여주인공 보다 더 돋보인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동양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히로시마의 상처는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원폭의 피해로 수십만명이 일시에 죽고 불구가 됐다.
더군다나 태아에게까지 그 피해가 전해져 다음 세대에도 선천적 기형들이 속출한다.
일본은 어떻게 미국과 화해할 수 있었을까?
만약 한국에 그러한 테러가 가해졌다면 한국인은 미국과 진정으로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난 일본이 현재의 미국과 이렇게 잘 지낸다는 사실이 놀랍다.
너무나 끔찍한 전쟁 범죄가 아닌가?
누군가의 말처럼 유럽 국가였다면, 이를테면 히틀러가 아무리 항복을 안 하고 버틴다 해도 과연 독일에 원폭을 투하할 수 있었을까?
영화 속에 나온 대사처럼 이건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아닐 수 없다.
잠깐 등장하지만 원폭 피해자들의 면면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다.
오늘날 일본의 경제성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는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특히 난징 대학살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원폭 피해자로서 정당한 보상과 위로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원폭 투하를 결정한 미국 정부의 그 잔인함이 놀랍기만 하다.
(그런 거 생각하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또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끔찍한 일인지!)
영화 속의 여자는 반핵 영화를 찍기 위해 히로시마에 머물고 거기서 일본인 건축가를 만나 하룻밤 정사를 벌인다.
한 눈에 반한 이 커플은, 다음날 일본을 떠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보내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이틀에 걸친 짧은 여정 동안 벌어진, 어찌 보면 러닝 타임과 비슷한, <비포 앤 애프터> 가 생각나는 영화다.
<비포 앤 애프터>의 50년대 버전이라고 할까?
문제는 둘 다 유부남, 유부녀라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붙잡는다.
여자는 몇 번이나 남자의 손을 놓고 떠나지만 다시 남자 곁으로 돌아와 맴돈다.
결국 마지막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호텔로 들어가는 걸로 끝나는데 확실한 결말은 없다.
아마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과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남자는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혹은 여자는 프랑스의 아이들을 버리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히로시마에 머물면서 바람을 피우겠다는 것인지?
만약 여자가 계속 일본에 머문다면 혹은 일본 여자라면 둘의 관계는 혼외정사로 쭉 이어질 것 같다.
둘 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고 푹 빠져 있다.
더구나 이 멋진 일본 남자는, 여자의 아픈 첫사랑 상처를 완전히 치유해 줬다.
사실 이 상처가 영화의 주된 모티브인데 여자는 과거 2차 대전 당시 독일 병사를 사랑했다.
그는 프랑스가 해방되는 날 총맞아 죽었고 그의 시체를 붙잡고 새벽까지 지키던 여자는, 아버지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된다.
아버지는 적군 병사와 연애한 딸 때문에 약국 문도 닫는다.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질시, 열 여덟 살의 어린 소녀는 정신 착란증을 앓는다.
지하실에 갇히면 벽을 긁어 손톱에 피가 맺히면 그것을 빨아 먹으면서 위로를 찾는다.
자학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구체적인 명시는 없지만 내가 보기엔 정신병을 앓았음이 분명하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삭발된 머리가 자라면서 (세상에, 프랑스에서도 이런 만행이 자행되다니!) 지하실에서 풀려나고 파리로 떠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진짜 치유는, 히로시마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 고백하면서 완전히 털어낸다.
그녀의 대사 속에서 자주 그 독일인 첫사랑과 일본 남자를 동일시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매국노 딸이 부끄럽고 수용하기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마저 딸을 외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아마 아버지로서는 생업마저 지장을 받게 되자 딸을 감쌀 여력을 잃어 버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가족이라는 것도 어느 한계 이상을 넘어가면 포용할 수 없는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이 무한대라고 하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 어쨌든 인간은 자기 자신이 우선이다.
가엾은 소녀는, 그러나 그 첫사랑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여배우가 된다.
자기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는 법이다.
일본인 남자와 프랑스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남자의 프랑스어 발음이 너무 좋다.
혹시 혼혈인이 아닐까 싶기도 할 정도로 굴러 가는 불어 발음이 너무 좋다.
국적 문제 뿐 아니라 혼외정사라는 문제가 겹쳐 있는 이 커플들의 운명이 무척 궁금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결론은 없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