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와이드 셧 - 할인행사
스탠리 큐브릭 감독, 톰 크루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상당히 어려운, 독특한 영화였다.
기묘한 분위기,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늘씬한 배우들이 펼치는 이상야릇한 혼란들...
영화 설명에는 니콜 키드먼이 맡은 앨리스가 정숙한 여인이라고 나오는데 글쎄, 겉보기에도 퍽이나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이는데 그건 아니지.
둘 다 화면이 참 아름다운 배우들이다.
특히 큰 키와 긴 다리를 자랑하는 니콜은, 안경을 씀으로써 자신의 도발적인 매력을 한 단계 낮춘다.

 

난 대체 왜 이 영화가 야하다는 소문에 휩싸였는지 모르겠다.
비밀스런 성에서 벌어지는 혼음파티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니콜의 벗은 몸 때문에?
왠걸, 그 보다 더한 영화는 도처에 널려 있다.
오히려 도발적이고 위태로운 분위기 때문에 긴장감을 준다.
노골적인 섹스씬은 거의 한 장면도 없었고 혼음파티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감독이 연출하는 그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세계적인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사운드 트랙도 환성적으로 잘 어울린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아 정확한 분위기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그 나라는, 적어도 한국 보다는 남편과 아내의 정절 문제를 비슷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보다는 덜하겠지만, 한국 사회는 남자들의 일회적인 섹스나 매춘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술먹고 하루밤 자는 게 무슨 대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지속적인 관계만 아니다면, 혹은 적당한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면, 즉 가정으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다면 일시적인 바람은 용납되어지는 분위기다.
남자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빌은, 실제로 섹스를 즐긴 것도 아니고, 단지 혼음파티에 호기심으로 찾아갔을 뿐이고, 창녀와의 하룻밤도 돈만 날렸을 뿐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크게 죄책감을 느낄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괴로워하며 아내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아내 앨리스 역시 단지 해군장교와의 하룻밤을 꿈꾸었을 뿐 실제적인 행위는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현실, 머릿속에서의 욕망에 죄책감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괴로워 한다.
어쩌면 그 점이 일반적인 포르노나 3류 영화와는 다른, 작품의 수준을 높혀 주는 포인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이 부부의 감추어진 성적 욕망 내지는 정절에 대한 충실도를 보면서 스와핑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오르내리는 요즘의 현실과 비교해 봤을 때, 순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성적 개방이 자연스러워졌다 해도, 여전히 결혼이란 한 사람과의 독점적인 성관계를 법적으로 약속한, 매우 폐쇄적인 관계임을 깨달았다.
간통죄라는 법률적인 위반 행위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구속력이 훨씬 강하게 작용할 것 같다.
오히려 성관계 개방 풍조는, 결혼 이전에, 미혼남녀가 섹스를 연애행위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음을 뜻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부부간의 정절은, 혼전순결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외도 한 번 안 하는 부부가 어딨냐는 발언은 매우 무책임한 소리라는 걸,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사회적 제도로 억압하면서 사는 것, 그게 바로 결혼이 아니겠는가?

 

비밀스러운 혼음파티는, 성에 대한 인간의 퇴폐적인 욕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폐쇄적으로 모여 서로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즐긴다...
뭐랄까, 즐거움의 극치에 이르다 보니 적정선을 넘어서 가학적이고 변태스러운 단계에 이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단에 다달았다고 해야 할까?
마약과 술에 절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남녀의 육체에 탐닉하는 모습, 성적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외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비밀스럽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며 심지어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가학성은 아무래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든 신체나 정신에 위협을 가하는 폭력적인 탐미는 아름답지 못하다.
어떤 즐거움이든 적당한 수위가 있는 것 같다.

 

니콜 키드먼과 탐 크루즈 모두 눈을 즐겁게 할 정도로 훌륭한 마스크와 몸매를 지녔고 영화 분위기나 음악 모두 마음에 든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의사면허증이 마치 운전면허증처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의 빌은, 의사라는 직업을 내세워 마치 경찰처럼, 많은 일을 쉽게 해결한다.
미국 문화의 신기한 점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
의사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나라 의사면허증은 A4 한 장 크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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