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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북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피터 탤랙 엮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 읽은 책은 일단 규모에 살짝 기가 질리는 책이다.
지은이가 리처드 리키인데 왜 나는 이걸 리처드 도킨스라고 봤는지 모르겠다.
도킨스가 서문을 썼다고 들었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도킨스 이름은 안 나온다.
내가 자꾸 착각을 하는 건지...
칼 세이건의 전 부인인 린 마굴리스가 역사적인 과학의 발전을 이끈 250 인 가운데 한 명으로 등장하는 걸 보고, 과연 이 아주머니의 명성이 허상이 아님을 알았다.
나를 떠나는 건 당신의 큰 실수라면서, 린의 이혼요구에 깜짝 놀랬다던 세이건 보다 학문적으로는 더 유명한 사람이 되버렸으니, 당시의 마굴리스가 콧방귀를 뀌었을 것 같다.
하여튼 생물학 책에 나오는 이론, 즉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박테리아가 숙주에게 기생한 것으로써 공생관계로 진화했다는 이론이 바로 이 마굴리스에 의해 전개된 이론이라고 한다.
교과서에 나올 때는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끄적거려 놨나, 학자들의 말장난 아닌가 싶었는데 과연 찬찬히 성립 배경을 읽어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통 핵 안에만 DNA가 들어 있는데, 핵 밖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도 DNA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두 생물은 과거에 각기 별개의 존재였다고 보는 것이다.
셀이 박테리아를 잡아 먹어 붙잡고 지금까지 20억년에 걸쳐 살아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경이롭게 들린다.
아, 정말 생명의 신비와 정교함은 얼마나 놀랍고도 위대한지!
핵과 미토콘드리아에 각기 DNA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진핵생물이고,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게 원핵생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핵과 진핵의 차이가 바로 이 미토콘드리아의 유무, 그리고 DNA가 한 벌인가, 두 벌인가 차이라는 거다.
원핵 생물은 지금으로부터 40억년 전부터 있어 왔고 진핵 생물은 20억년 후에 진화했다.
분자의 진화까지 논하는 현대 생물학의 깊이는 정말 놀랍다.
천왕성의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은 당시 영국 국왕의 이름을 따서 조지의 별이라고 부르자 했단다.
조지 3세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를 천문학대의 수장으로 임명했다고 하니, 과연 대단한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전문적인 천문학자도 아닌 사람이 단지 취미로 망원경을 만지다가 이런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두루두루 넓은 범위의 교양을 추구했다는 당시 영국 신사들의 과학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번역자에 대한 불만으로는, 가능하면 중요한 용어는 영어로 함께 표기를 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정확한 용어가 뭔지 궁금한데 무조건 한글로 번역만 해 놔서 아쉬웠다.
고유 명사처럼 쓰이는 단어들일텐데 영문 표기를 알면 인터넷에서 찾기도 쉽지 않겠는가.
내 전공 분야인 생물학 쪽에서는 그런대로 잘 알아 먹었는데 솔직히 물리 쪽은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갔다.
물리학의 상식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는 유용했다.
특히 도저히 감이 안 잡히던 초끈 이론이 대체 무슨 얘기인지 좀 알 것 같다.
양자역학도 자주 반복되니까 이제 확률론이구나, 하고 감이 좀 잡힌다.
역시 21세기의 교양인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거의 대부분이 노벨상을 받은 업적들이 많았다.
현대로 올수록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들이라 노벨상이 과학 발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놀라운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념도 처음 도입됐을 때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는 것이다.
가속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뉴턴이라는 천재를 기다려야 했다는 문장이 확 와 닿았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나 케플러의 행성의 타원 궤도 같은 당연한 상식은 물론이거니와, 화석이 대체 뭐냐는, 너무 당연한 질문에도 당시 사람들은 고민해야 했다는 걸 보면, 역시 과학의 위대함은 누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이 정립되면 그 위에 쌓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 혹은 새로운 개념 정립은 수많은 실패와 위대한 천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소개되는 과학자들은 죄다 놀라운 천재들 같다.
역자 후기에 동양의 과학이 소개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했는데, 과학이라는 것이 동서양, 혹은 국가와 민족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든다.
여기 소개된 이들은 인류 문화의 보배들이다.
다만, 동양 쪽 과학의 전통은 어떠했는지는 궁금하다.
250개의 주제에 불과하다고 해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아직 1/3이나 남았다.
생각보다 내용이 방대하다.
한쪽은 설명, 한 쪽은 올 컬러 사진이라는 획기적인 구성을 취한 점이 마음에 든다.
단 책 도판이 너무 커서 읽느라 힘들다.
과학에 관심있는 대중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과학의 전분야를 골고루 망라하고 있고, 한 페이지에 핵심적인 설명만 압축했기 때문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 교양서로 좋다.
가끔 꺼내 놓고 한 장씩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옆의 사진이나 그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