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의 역사 1 ㅣ 히스토리아 문디 6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3월
평점 :
이 책은 참 예쁘다
원래는 한 권이었을 것 같은데, 분량이 좀 많아지긴 하겠지만 꼭 두 권으로 분책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1970년대에 초판이 나왔다고 하니, 벌써 40년이 된 책이다.
역사라는 게 원래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니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의의가 퇴색되는 건 아니겠지만, 하여튼 이 책 역시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매우 현대적인 시각을 자랑한다.
특히 지도를 손으로 그려낸 앞 표지는 정말 마음에 든다.
표지 디자인을 한국에서 새로 했는지 아니면 원래 미국판에도 이렇게 되어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그가 쓴 <전염병의 역사>도 퍽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 역시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인류의 첫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집트와 인더스 강 유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기술한 부분이 무척 유용했다.
<히스토리카 세계사> 를 읽을 때만 해도 솔직히 메소포타미아 지역 역사는 감이 잘 안 왔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지는 기분이다.
위대한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 제국의 조형물은 부조로 새겨진 벽을 아예 통째로 뜯어온 대영박물관에서 처음 접했다.
그 때만 해도 너무나 웅장하고 이국적이라 대체 이건 뭐야 , 정말 낯설다, 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워낙 사전 지식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 다시 본다면 감회가 새로울텐데...
그 외에 서양의 고대나 중세,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은 비교적 익숙해서 그런지 쉽게 읽혀졌다.
일본의 경우는 고대 발전상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따로 한 챕터를 할애하여 설명했다.
확실히 일본은 극동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인에게 확실히 하나의 독립된 문명을 지닌 독자적인 나라로 깊이 각인된 모양이다.
일본인을 우습게 보는 건 한국인 뿐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한반도는 물론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고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기는 했으나 중국의 거대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으며 속국으로 간주됐다는 문장에서, 과거 한국의 역사적 위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저자가 유난히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부분이었다.
일본처럼 서양의 위협에 효율적으로 그리고 혁신적으로 대응한 나라는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 일본을 찾아서" 를 읽으면서 느낀 바지만, 혁명을 일으킨 메이지 유신 세력들, 그러니까 일본 지도층의 지도력과 미래를 보는 혜안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여러가지 상황적인 이점도 분명히 있었겠으나, 하여튼 구한말 조선의 구태의연한 유림이나 고종과 민비를 위시한 집권층의 무능함과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을 수 없다.
유목민의 침략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점이 특이했다.
유목민이라면 그저 몽골이나 바이킹처럼 농경사회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국지적인 사건 정도로 생각했는데, 단순히 한 지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연쇄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일으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문화를 이룩하고 땅에 정착해서 사는 농경민과, 스텝 지역을 방랑하면서 사는 공격적인 전사 집단인 유목민의 대립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스텝 지역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시베리아나 몽골 지역 부근은 확실한데 어디까지를 포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원전 1700년 무렵, 전차가 처음으로 도입된 후 유목민들의 공격이 시작됐고 메소포타미아는 분열된다.
재밌는 것은, 전설상의 중국 첫 왕조인 하나라를 멸망시킨 은나라가 바로 이 전차 부족이라고 추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은 역시 외부에서 유입된 이민족일 수 있다는 얘기다.
독자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집트나 인더스 문명, 심지어 중국의 황허 문명까지도 수메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유목민에 의해 도입된 전차나 기마병 같은 혁신적인 도구들이 전 세계의 전쟁 판도를 바꾸었다는 점이 신기하다.
결국 고대 세계도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았고 오래 전부터 (어쩌면 인류의 발달 초기부터) 꾸준히 교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완전히 고립된 사회는 대항해가 시작될때까지도 구석기 시대의 수렵 채집민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양이 동양을 앞지른 이유도 (특히 위대한 중국의 몰락은 더더군다나!) 끊임없이 교역을 하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는 말이 세계사에도 딱 들어맞는다.
보통 세계사를 한 권으로 개관하려면 지나치게 생략되고 중요한 사건 위주로만 가다 보니 서사력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남경태의 <종횡무진 세계사> 가 재미있으면서도 생략이 너무 많아 아쉬웠다) 이 책은 응집력을 유지하면서 밀도있게 세계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아마 그런 힘이 40년의 시간을 버티게 했을 것이다.
특히 뒷부분의 참고 도서 소개는 비록 영어책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독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길잡이가 된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걸 보면 한국인 저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번역서는 역시 한계가 있다.
역량있는 인문학 저서들이 많이 발간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