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를 울게 하고 나는 세상을 웃게 한다
알리 아크바르 지음, 이채련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복잡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가볍고 유머 감각이 있다.
나귀님의 페이퍼에서 발견한 책인데,  리뷰가 많이 달려 있길래,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싶어 다급히(?) 읽게 됐다.
나귀님이 지적한 책의 한계를 나도 느낄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신파조고 잘 된 에세이로 보기에는 전체적인 수준이 한계가 있다는 것) 그 점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재밌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오히려 저자의 약력을 생각한다면, 즉 파키스탄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열 두 살 때까지 배운 게 전부이고, 프랑스로 이민와서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프랑스어로 이만한 에세이를 썼다면 나름 훌륭하다고 평가할 만 하다.
저자도 밝힌 바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유머가 있어서 좋다.
내가 보기에 알리 아크바르라는 사람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 같다.
모험심도 뛰어나고 재치가 있다.
약간 이상한 점은, 알리가 무려 30년이 넘게 프랑스 땅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데도 여전히 체류증 밖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귀화가 어려운 걸까?
불법 이민자라서 그런가?
강대국이 약소국의 이민자들을 좀 넓게 포용해 주면 안 될까?
더군다나 프랑스는 과거 식민 지배라는 과오까지 저질렀지 않은가?
불법 이민자들 덕분에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자국민이 안 하는데 뭘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제한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민자 수용이야 말로 선진국의 도덕심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프랑스도 자국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무조건 프랑스 국적을 부여하는 모양이다.
그런 줄 알았으면 알리의 큰 아들도 프랑스에 와서 출산했을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나머지 네 명은 모두 프랑스에서 출산해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으나 큰 아들만 외국인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큰 아들이 겪는 상처가 꽤 큰 모양이다.
아버지가 유명해졌으니 선처를 해 주면 참 좋을텐데...

제 자식만 최고라고 여기는 부모들이 하도 많아 이거야 말로 이기주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들 하나씩만 낳기 때문에 지나치게 정성을 쏟는 걸까?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보면 자식도 많이 낳을 뿐더러 그 자식을 매우 함부로 대한다.
우리나라 역시 60년대에는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교육도 못 시키는 집이 많았다.
때리는 아버지와 감싸는 어머니의 대립구도는 60년대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지는 걸까?
알리의 아버지 역시 큰아들 알리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가출을 했을 때 거리에 발가벗겨 놓고서 행인들에게 침을 뱉어 달라고 부탁했다.
본인의 자서전이 아니라면 믿기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명예살인 문제는 이 책에도 등장한다.
파키스탄은 자식의 배우자를 부모가 결정하기 때문에, 만약 여자가 연애를 하다 들키면 아버지나 오빠에 의해 살해당한다고 한다.
집에서 쫒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죽여 버린다니, 이 문제는 아무리 문화적 상대성을 들먹인다 해도 (이슬람은 평화와 평등의 종교니 어쩌니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재밌는 것은, 알리가 아버지에게 그토록 모욕과 구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신문팔이로 번 돈을 집으로 송금했다는 사실이다.
딸도 아니고 아들이 말이다.
이런 것만 봐도 알리가 얼마나 착실한 청년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이었고 자기도 다리 밑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집에 돈을 송금한다.
파리에서 신문팔이로 번 돈을 파키스탄까지 보내다니!!
알리는 이슬람교도로서의 정체성도 잊지 않는다.
결혼 전까지 혼전순결도 지키려고 애쓴다.
배를 타는 선원 생활을 하면서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무척 착실한 청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알리가 파리에서 비록 신문팔이이긴 하지만 자리를 잡고 책까지 낸 데에는 이런 성실한 태도가 밑받침이 됐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내 아지자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을 큰 명예로 생각한다.
아이가 다섯이나 되니 바깥 일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여자가 일하는 것을 남편의 무능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알리네 가족은 절대적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현대 서구 여성들의 직업 활동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페미니즘도 계층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신문팔이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직업인지라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다.
가판대에서 신문이나 주간지 사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직접 신문을 파는 사람이 있다면 사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리는 르 몽드가 쉬는 날이면 자기가 쓴 책을 직접 팔러 다닌다고 한다.
벌써 5천부나 팔았다고 하니, 과연 대단한 생활력이 아닐 수 없다.
겨우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 밖에 받지 못한 사람이, 외국 땅에서 외국어로 이만큼의 에세이를 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가 보통 이상의 지적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여튼 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고 여전히 신문을 팔러 다닌다고 하는데, 인세 많이 받아서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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