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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 - 남극의 비극적 영웅, 로버트 팔콘 스콧
로버트 팔콘 스콧 지음, 박미경 편역 / 세상을여는창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실린 스콧의 편지 때문에 창피하게도 도서관에서 펑펑 울었다.
뒤에 나오는 탐험 일지는 솔직히 지루했지만 앞부분의 편지는 정말 가슴을 울린다.
스콧이 죽기 직전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만 읽어도 스콧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남자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위대한" 영웅은 못 됐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비극적인 "영웅" 임은 분명하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즉 그가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인간의 위대함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 고통 가운데서도 신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더 큰 신의 뜻이 있을 거라고 믿는 그 신앙심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 마땅하다.
거리에서 하나님을 외치고 교회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 사람의 신앙이 더 큰가, 아니면 자신의 분야에서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이의 신앙이 더 큰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의존하고 자신의 실패와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 스콧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훈훈한 사랑을 남긴다.
죽기 전, 자신에게 의존했던 아내와 아이가 의지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가장 가슴아파 했던 스콧은, 주변 사람들과 영국 사회에 아내와 아이를 돌봐 달라고 호소한다.
자신의 죽음은 부끄럽지도 않고 후회도 없으나, 자신이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의지하고 살았던 이들이 버려진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계백 장군이 출정 전 가족의 목을 벤 그 심정이 갑자기 이해되는 기분이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자기가 덜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죽기 전 가장의 가장 큰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스콧은 가족을 죽이지는 못하고 대신 영국 사회에 간절히 호소한다.
우리나라처럼 부강한 나라라면 내 가족을 돌봐 줄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한다.
스콧이 사후에라도 명예를 얻고 그의 탐험정신이 온 영국인에게 귀감이 될 만 하다고 판단됐다면 분명히 그의 가족들은 사회의 보호를 받았으리라.
실패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 준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