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 - 성군(聖君), 성종의 리더십에 대한 최초의 재평가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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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씨라면, 유시민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청바지를 입고 의회에서 선서를 한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TV 토론의 패널로 기억한다.
그 때 어찌나 엉성한 논리로 유시민에게 깨졌던지, 나중에 그가 이 군주 열전이라는 책을 냈을 때 도무지 신뢰가 안 가고, 그렇고 그런 뻔한 책이겠지 싶어 한동안 눈길도 안 줬다.
저널리스트라는 한계, 즉 비전문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꼼꼼하게 사료 분석을 하고 성실하게 썼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도 그가 퍽 성실한 저자였음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전체를 조망하는 역사적 안목이 아마추어적임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원래가 신문기자들이 쓰는 책은 전문성 면에서 학자들에게 한 수 아래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책을 골라 든 이유는, 성종 때가 워낙 태평성대여서 그런지 폐비 사건 외에는 언급된 책이 없어서 아쉬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종 시대에 관심을 갖고 조명해 준 책이라는 점에서 반가웠다.
그런 의미로 장희빈 사건 외에는 따로 언급되지 않는 숙종 시대도, 이한우씨의 책으로 읽어볼까 싶다.

세조에 대한 평가는, 어린 임금이 즉위한 후 어지러웠던 정국을 바로잡아 안정을 이뤘다는 쪽과, 오히려 공신을 남발해 특권층을 형성했다는 부정적인 쪽이 공존하는 것 같다.
사육신도 충신이고 세조도 구국의 영웅이라는 식의 둘 다 좋은 쪽으로 미화되는 게 요즘의 평가 같기도 하다.
박현모나, 이 책의 저자는 모두 단종의 즉위가 정국을 위태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세조가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다 쪽이다.
심지어 세종이, 아버지 태종처럼 전격적으로 세자를 교체했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임용한씨 입장을 지지한다.
문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40이 거의 다 돼서였다.
그는 오히려 성종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
아버지 세종 대에 대리청정을 한 것만도 십여년에 이른다.
요컨대, 아버지 세종이 50이 넘어서까지 재위했기 때문에, 즉 당시 조선 왕의 평균 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았기 때문에 문종의 즉위가 늦어졌을 뿐이다.
문종이 병약했다고 하지만 그는 조선왕의 평균 수명에 비춰 볼 때 절대 빨리 죽은 게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린 세자를 지켜 줄 왕비나 세자빈 가문, 혹은 대비 등이 없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세종의 판단 미스였던 것 같다.
너무 도덕적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세자빈의 가문이 너무 한미해서 빈궁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방술을 쓴다는 모호한 이유로 첫번째 세자빈 김씨를 쫒아낸 것이나, 동성애를 한다고 해서 두번째 세자빈 봉씨를 쫒아낸 것 등은, 도덕주의자인 세종으로서는 왕실의 지엄함을 보이기 위해 당연한 것이었겠으나, 결국 그런 세종의 지나치게 결벽증적 처사가 단종의 죽음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임용한씨의 평대로, 문종은 아버지 세종의 정치철학을 잘 이해했던 학자 군주였고,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인해 엄청난 특권층이 양산됐다고 생각한다.
세종은 비단 문종이 큰 아들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못마땅한 점은, 예종의 독살설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게, 저자의 지적대로 예종은 정희왕후의 친아들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이 갔더라면 최고 권력을 쥐고 있던 어머니 정희대비가 유야무야 넘어갔겠는가?
저자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바로 독살 가능성이 있다고만 주장한다.
한명회 등이 권력을 잡기 위해 정희왕후와 손잡고 독살을 주도했다는 식으로 마치 드라마 같은 어설픈 논리를 편다.
형이었던 의경세자도 마찬가지지만, 이 집안 아들들의 건강이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둘 다 20대의 새파란 나이에 죽지 않았던가?
아프다는 기록이 없었다는 이유로, 즉 급사했다고 해서 독살로 모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이덕일씨 책이 많이 팔리면서 생긴 폐단 같기도 한데, 하여튼 지나친 추측은 위험하다.
나는 독살설의 제 1순위로 지목되는 정조 역시, 박현모씨처럼 과로사 했다고 본다.

책의 장점을 들자면 꼼꼼하게 분석한 자료의 성실함이다.
특히 가계도나 혼맥 등을 보면 당시 집권층의 중혼이 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저기 겹사돈이 되고 왕실과 이중 삼중으로 얽혀 있다.
역시 혼인은 세력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태종의 강력한 외척 숙청은 참으로 대단하다.
공신층을 양산해 내고 친인척을 중요하게 기용한 세조에 비해, 태종은 왕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모조리 없애 버린다.
조선 왕조 최고의 왕권을 지녔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정희왕후는 역사서에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권력에 관심이 없는, 점잖은 인물로 묘사되는데, 인수대비 보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권력을 휘둘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특별하게 치부를 하고 문정왕후처럼 후대의 비난을 샀던 건 아니지만, 하여튼 오빠나 동생 등이 대비의 위세를 업고 요직에 오른 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도 정도껏 해야 욕을 안 먹는다.
윤임이나 윤원형 등의 부패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역사에 길이 간신으로 남는 것 같다.

한자 공부를 많이 했다.
요즘 안 쓰는 단어도 많아서 약간 어렵기도 했는데, 전자사전이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다.
사극에 가끔 등장하는 인물들을 만난 것도 반가웠다.
문득 드는 생각이, 요즘 방영하는 왕과 나, 의 저자는 이 책을 참고했지 않나 싶다.
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에피소드 인용한 것도 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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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ngkiller 2007-12-2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 이한우 논설...그래보여도 아카데미즘에 대한 애정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죠.^^ 제목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사람 이래저래 인문학에 대한 집필활동을 제법 성실하게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퀄리티를 제법 인정받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래도 극우파 진영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실제 토론회에서 제대로 된 상대 만나면 왕창 깨져버리죠.ㅎㅎ 이사람도 처음엔 제법 생각있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는데...어느 순간 방씨일가의 세뇌술에 놀아나버리고 말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