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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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제목이 훨씬 멋들어진다.
하긴 실제 일본어의 뉘앙스를 모르니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몇년 전에 한창 다치바나가 인기를 끌 무렵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읽었던 책인데 문득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즉석에서 읽게 됐다.
확실히 책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당시에는 꽤 지루하고 별 감흥도 없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 보니 생각보다 평이하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다독을 넘어 남독을 한다는 점에서, 또 문학보다 논픽션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나와 독서 성향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난 저술가는 아니지만 하여튼 이 사람과 비슷한 부류의 독서가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컫는 19세기 고전들은 세월의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하여튼 내가 쉽게 문학에 못 빠지는 이유도 작가들의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감탄할 만큼 흥미진진한 상상력을 구사하는 작가를 별로 보지 못했다.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생생하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는 말이 진실임을 소설을 통해 확인한다.
어쩜 이렇게도 스토리라인이 부족한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고전에 대해서는 내가 평가할 수준이 못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읽으려고 하지만, 하여튼 이른바 현대문학이나 베스트셀러는 내 흥미를 끈 책이 거의 없다.
나 역시 다치바나씨 처럼 논픽션이 훨씬 좋다.
그렇다고 해서 기자나 취재작가들이 쓰는 르포 형식의 책이 좋다는 건 아니다.
기자들이 쓰는 이른바 르포 형식의 책을 보면 깊이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하기엔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논문 수준으로 분석해서 쓴 책들이 제일 믿을 만 하다.
그래서인지 교수들의 책을 많이 보게 된다.

다행히 나는 다치바나씨 처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닌지라 책 보관에 관해서는 고민이 적다.
이 사람은 책이 어찌나 많은지 고양이 빌딩을 지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고로만 채워진 빌딩이라...
자료의 방대함 만으로도 기가 질린다.
서재는 나도 갖고 싶다.
도서관이 빨리 문을 닫기 때문에 주로 심야 시간대에 책을 읽는 나는 아쉬울 때가 많다.
나도 저자처럼 큰 책상이 늘 아쉽다.
아무리 정리를 해도 책 몇 권 읽다 보면 금방 공간이 좁아지니 말이다.
예전에는 지루한 책이라도 끝까지 읽으려고 애썼는데 요즘은 저자처럼, 불필요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던져 버린다.
제일 짜증나는 책이, 수준미달이라고 생각될 때다.
어쩜 이렇게 한심한 글을 책으로 출판할 생각을 했을까 싶을 때 괜히 화가 난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식의 요즘 분위기를 싫어한다.

표정훈씨 책처럼 우리 현실에 딱 들어맞는 흥미진진한 독서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가볍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사람의 책으로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나, 와 사색기행, 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해 근황을 알리는 기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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