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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ㅣ 우리 역사 바로잡기 1
이덕일, 김병기, 신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더군다나 이덕일이라는 작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 때문에 일부러 손에 안 잡았던 책이다
이런 식의 제목, 매우 불편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마케팅의 일부로써는 유익할 수 있겠으나, 바람직한 사학자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이런 행태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똑같은 양식의 대응 밖에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조상이 위대했다는 것과 현재의 우리가, 더 엄밀히 말해 내가 위대하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따지면 자국이 자기 나라 역사와 신화를 과장되게 꾸미고 국민들에게 가르치는 모든 나라의 행태가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일본이나 중국 욕할 게 아니라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이라고 엄밀하게 구분될 범주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더더군다나 고대 고구려인이든 고조선인이든 동이족이든 현재의 한국인의 100% 조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인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 보다야 우리와 더 가깝겠지만 하여튼 고대 고구려인이 반드시 현대의 한국인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집단인지는 좀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문제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보편적인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라는 말처럼, 인류라는 큰 틀에서 과거 우리 조상들을 아우를 수는 없을까?
외계인이라도 나타나야 민족이나 인종차별이 없어지고 하나의 지구인으로 뭉치게 될까?
소크라테스나 알렉산더 혹은 진시황, 공자, 광개토대왕 등을 우리 모두의 조상으로 자랑스러워 할 수는 없을까?
여전히 국경 개념이 가장 중요한 집단 정체성의 한계인 걸 보면 아주 먼 훗날의 일일지 모르나, 어쨌든 고대사를 과장한다고 해서 현재의 우리가 자랑스러워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을 벗어 던지고 본다면 책 내용 자체는 비교적 성실한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사학자답게 꼼꼼하게 유물과 유적을 탐사하고 비교적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 나간 점은 높이 산다
아마추어 역사가들의 과장된 논리 전개가 없어서 신뢰가 간다
고대사는 워낙 알려진 게 없다 보니 이런저런 잡다한 해석이 가능한 분야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게 고대사의 매력일지로 모르지만.
하여튼 과장과 비약이 심하지 않다면 다양한 의견 표출은 역사학의 발전이나 대중의 흥미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덕일씨처럼 고조선이 요동벌판을 호령하고 한반도를 넘어 중국 대륙, 심지어 산해관 즉 만리장성을 국경으로 할 정도로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고 보는 관점도 있을 수 있겠고, 대동강 유역 중심의 소국이었다는 주장도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여러 관점의 추론이 가능한 상황인데도 발해가 한국사가 아닐 수 있다고 하면 죽일 놈 취급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이종욱씨 같은 경우는, 대조영이 말갈인이라는 점을 들어 또 민족 구성 대부분이 말갈인이라는 점을 들어 한국사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럼 이 사람은 민족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어용 사학자인가?
이근우가 쓴 고대사 관련 책을 보면, 고조선의 영토라고 규정짓는 이른바 표지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반드시 고조선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읽은지 오래 되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비파형 동검이 나온다고 해서 다 고조선 땅은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또 비슷한 경우로, 역사스페셜에서 백제에서 쓰던 행정구역명이 산동반도에도 있었다는 근거 하나만 가지고 백제가 산동반도까지 지배력을 확보했다고 보는 것은 논리의 심한 비약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충분히 근거가 있는 얘기다
이덕일씨는 위만조선의 성립과 함께 철기문화가 중국에서 넘어왔다는 주장을 극력하게 반대하는데 (즉 철기문화가 자체적으로 한민족의 손에 의해 발생했다고 본다), 얼마 전에 읽은 제럴드 다이아먼드의 "총균쇠" 에 따르면 문명은 원래 전파되는 것이다
대륙에서 반도로, 더 나아가 일본 열도로 전파되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닐까?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 줬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으로부터 문화를 전해 받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건 일관되지 못한 태도다
그리고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 내에 있다고 해서 꼭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식민지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을까?
한사군이 한반도 밖에 있었다면 식민지가 아니라는 얘기인가?
이덕일씨가 역사서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집필하고 있음은 인정하는 바지만, 하여튼 나하고는 영 관점이 안 맞는 저자다
어쨌든 잊혀진 나라, 혹은 미지의 나라 고조선에 대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환기의 관점에서는 의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