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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성의 결혼과 생활 - 송대 여성을 중심으로
P.B.에브레이 지음 / 삼지원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과는 달리, 중국 전 시대의 여성사를 다룬 게 아니라 송나라 때 여성사로 국한시킨 책이다
범위를 한정시켜 오히려 심도있는 분석을 한 것 같다
원저 그대로 송나라 시대 여성사라고 이름붙여도 좋았을 뻔 했다
저자의 시각이 새로웠던 점은,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가부장제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그녀들도 자발적으로 사회 체제 유지에 봉사했다고 본 점이다
그러고 보면 딸에게 전족을 시킨 것도 바로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여성들 역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충분히 공감했고 주체적으로 적응해 나갔다고 보는 시각이 새롭게 느껴진다
여성학자가 쓴 글이기 때문에 더욱 신뢰가 간다
단순히 흥미 위주로 자기 생각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학술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가는 책이다
미국인이 중국 문헌을 분석하면서 쓴 책이라 확실히 애매모호한 구석들이 있다
한국인이 서양사를 쓸 때도 비슷한 한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워낙 바빠 한 번에 죽 읽지 못하고 몇 번에 걸쳐 나눠 읽는 바람에 집중도가 좀 떨어지긴 했으나 충분히 흥미를 유지할 만큼 재밌는 책이었고 유익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점은, 서자에 대한 대우가 어땠는지 하는 부분이다
조선은 확실히 서자를 관직 진출도 못하게 하고 차별을 했는데 송나라 시대의 서자 대우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관직 진출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데 분명한 서술이 없어서 다소 아쉽다
재산 분배에 있어서는 차별을 뒀던 것 같다
어찌 됐든 공식적인 아내는 법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고 첩은 공식적으로는 가족의 범위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상속분보다는 최소한 같거나 많았던 걸 보면 확실히 딸은 남의 집에 출가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유교는 수직적인 질서를 중시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송나라 때 완성된 신유학, 특히 주희와 정이의 사상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데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각자의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 사회가 질서와 안정을 이룬다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너무 당연한 진리가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인지, 남녀가 유별하다는, 즉 남녀가 불평등하나는 것을 전제한 유교 사상이 쉽게 공감가지 않음은 당연한 것 같다
연애는 20세기 들어서야 결혼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는 말도 새삼 느끼게 된다
돈이나 집안, 지위 등을 우선시 한 사회적인 결합이 곧 결혼이라는 사실은, 지금 젊은이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송나라 시대에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낭만적인 결혼이란 현대의 발명품인가?
모든 조건을 떠나 개인과 개인의 1:1 결합이 사회적 결혼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결혼도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존엄성이 점점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혼은 새로운 동맹자를 얻는 결합 행위였다
당연히 신부의 지참금은 중요한 문제였다
혼수 문제로 결혼이 파토나는 걸 두고 우리 풍습에 없는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한탄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좋겠다
지참금과 혼수 목록에 따라 결혼의 성사 여부가 결정되는 과정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그려지는지...
오히려 현대 사회가 개인의 행복과 사랑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인간적이라느 생각이 든다
사회나 가정보다 개인이 더 중요시 되는 사회가 바로 현대 사회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그리스 시대 노인들의 한탄은,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자기 시대만이 특별히 타락하고 과거보다 문란해졌다는 생각이야 말로 역사의 발전을 전제하지 않은 어리석은 생각 같다
두 가문의 결합에 따른 불편한 감정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결혼식을 축제의 의미로 거창하게 치룬다는 저자의 해석이 재밌다
그러고 보면 결혼은 단순히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개인에 딸린 전 가족이 하나의 동맹을 맺는 과정이다
그러니 누가 손해를 보고 이득을 보는지 얼마나 셈하기가 복잡하겠는가?
그 부담감과 긴장을 줄이기 위해 결혼식은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잡았고 그것을 지킴으로써 심적인 긴장감을 최소화 시킬 수 있었다
나름대로 제도를 유지시키는 인간의 지혜였던 것이다
구청에서 신고하고 끝난다는, 혹은 동거가 보편화된 유럽 사회에 비춰 보면 확실히 거창한 결혼식을 올리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결혼을 개인보다는 가문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동거를 마치 도덕규범의 파괴라도 되는 듯 절대금지 시키는 노인네들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가문 보다 개인을 택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위험스럽게 여져기는 것이리라
저자의 성실한 연구가 돋볻이는 책이고 일독할 필요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