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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여자 밥 잘 하는 남자 -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이야기
알리 러셀 혹실드 지음, 백영미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분석적이고 학술적인 책이다
10여명의 가족을 심층 분석한 저자의 세심한 노력이 돋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배경이 1980년대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21세기와 이렇게도 유사한지!!
기왕이면 과거보다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롤 모델을 보여줬으면 더 좋겠다
미국의 가족 상황이 꼭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가사분담이나 육아분담 측면에서 아무래도 서구 사회를 더 동경할 수 밖에 없다
21세기 미국 가정의 현실이 궁금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 "현대인의 성생활" 도 이 책과 비슷한 방식으로 성에 관한 의식을 연구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보다 내밀한 부분까지도 파고 드는 방식으로 진행된 연구는, 대규모 집단 연구와는 또 다르게 놓치기 쉬운 점까지도 세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 역시 통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방문하고 장기간 같이 있음으로써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물론 지엽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평균적인 미국인을 대표할 수 있을지의 문제 말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바람직한 롤 모델을 필요로 한다
내가 본받고 따라갈 수 있는 그런 가족 모델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선진 사회는 나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위로로 삼고 있던 미국의 가정 현실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적나라하게 까발려준 이 책 때문에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결국 여자들은 완벽한 의미에서의 가사분담을 이룩할 수 없는 것일까?
더 답답한 것은 여성의 안식처는 가정, 남성은 일터라는 식의 성별 이분법이 어느 사회에서나 보인다는 점이다
저자는 바로 이 관습적인 개념을 분명하게 꼬집는다
겉으로는 집안일을 돕고 아이를 같이 키우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가까이서 실체를 들여다 보면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발견한다
하긴 당장 주위를 둘려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과연 남자들 중에서 집안일을 돕는 게 아니라, 책임지고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멀쩡하게 아내가 있는데도 아이들 아침을 굶기고 학교 보낼까 봐 걱정하는 아빠의 비율은 대한민국에서 몇 %나 될까?
기껏해야 늦잠 자는 아내를 비난하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확실히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가사일을 하는 전업주부의 가치는 농경사회 보다 더욱 더 하락할 수 밖에 없다
이혼율의 증가로 결혼이 더 이상 평생 직장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이 책 속의 여자들처럼 대부분 직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전히 가사일을 단지 돕는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일 뿐 자발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지 않는다
그러니 여자들은 직장일에다가 집안일까지 겹쳐 개인 시간은 낼 수가 없고 부부 관계는 악화되고 만다
이혼했을 때를 대비해서 든 보험이 (여성취업) 오히려 이혼을 유발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별 욕심이 없는 내 경우에 비춰 보자면, 아이를 안 낳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많은 부부들은 대부분 육아 때문에 힘들어 한다
아이가 없다면 적어도 아내는 가사 도우미를 쓰는 선에서 남편과 적절하게 합의를 볼 것이고 부부관계 개선을 위해 힘쓸 여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 단지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아이는 놀이방이나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는 정도로 해결될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미친 교육 열풍에 휘말리는 대한민국의 경우는 더더욱 엄마 의존도가 심해서, 맞벌이 부부 아이는 서울대에 갈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아이는 부모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솔직히 까발리자면 인간이 종족을 번식시키겠다는 이타심이나 의무감으로 아이를 갖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이기적인 유전자가 후손을 남기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자기를 닮은 자식을 원한다
이기심이 아니라면 입양 문화가 왜 활발하게 퍼지지 않았겠는가?
문득 드는 생각이, 어쩌면 나는 아이 대신 책을 원하고 있지 않나 싶은 거다
여자들이 일을 줄여가면서까지 아이에 집착하는 걸 보면서, 나는 책에 대한 내 욕심과 집착을 떠올렸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직장일을 적게 하려고 하고 로딩을 줄이려고 애쓰는 모습은, 내가 책을 보기 위해 빨리 퇴근하고 회식은 빠지려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는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게 내 소원이다
남자라면 이 소원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자는 직장일이 끝나면 나머지는 모두 자유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라면, 더군다나 아이까지 있는 여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자는 직장일이 끝남과 동시에 집에 가서 가사일과 육아를 시작해야 한다
저녁을 차리고 아이를 돌보고 집을 치우는 식으로 말이다
워킹맘으로써 가사노동에서 벗어날 새가 없는 엄마를 보면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나는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받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즉 다 타고난 대로 산다는 쪽) 이 책의 해석을 빌리자면 나는 언제나 바쁜 엄마를 보면서, 난 저렇게 안 살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학교 선생님인 엄마는 퇴근 후 가사일에 치여서 자기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자식은 셋이나 되고 교육열도 높아서 애들을 내버려두지 못했다
특별히 슈퍼우먼이지도 않는 엄마는 깔끔하지 못한 집에 대해 언제나 부끄러워 했다
자의식이 강한 나로서는, 엄마처럼 내 시간을 하나도 못 갖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은 바람직한 편이라고 평가하겠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가사 노동에 치여 책 읽을 시간을 한 시간도 못 갖는다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절대로!!
내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고 특히 아이에 대해 아예 갖기 않겠다고까지 생각한 것은, 가사부담과 양육이 완전히 여자에게만 책임지워지는 한국 사회 시스템 때문이다
나는 결혼 후에도 지금처럼 책을 읽고 싶고 내 시간을 갖고 싶다
책을 못 읽으면 정말 미쳐 버릴 것 같다
결국 나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나에게 안 맞는 건 아닐까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