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과 한글 발전
김슬옹 지음 / 역락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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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출처 목록이 100 페이지에 이르고 중간 중간 사료들이 많이 삽입되어 실제 분량은 훨씬 적은 듯 해서 한 번에 다 읽었다.

역시 좋은 독서는 그 자리에서 쭉 읽어 버리는 것이다.

누가 10분 독서를 말했는지 참.

그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10분씩 매일 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일종의 활자 중독이라 읽는 게 너무너무 좋은데 한글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글은 정말 세종대왕의 말씀처럼 어리석은 백성도 반나절이면 금방 익힐 수 있는 쉬운 글자라 진심으로 세종대왕께 무한 감사드린다.

한글이 얼마나 쉬운지는, 어린애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큰 딸은 첫째라 일부러 한글 학습지를 시켰는데 둘째는 바쁘기도 하고 열의도 떨어져 따로 신경을 못 써 줬는데도 언니가 옆에서 쓰는 걸 보더니 금방 따라서 쓰는 걸 보고 한글이 얼마나 배우기 쉬운 글자인지 새삼 확인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따르면 조선 시대 거의 대부분의 민중은 한자는 물론이고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한 문맹이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1920년생이셨던 할머니도 글자를 모르셨고 나중에 교회에 다니면서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 한글을 배우셨던 기억이 난다.

글씨를 쓸 기회가 없으셔서 그랬는지 손을 짚어가면서 읽을 수는 있어도 끝까지 쓰지는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 책에도 18세기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여성들의 한글 습득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나온다.

책의 제목에서 보여지듯 조선시대 훈민정음의 확산은 다름 아닌 여성 덕분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글이 여성들이나 쓰는 암클이라고 비하됐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여성들이 한글 저변 확대의 주인공이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이 부분이 참 신선하다.

조선은 망국 때까지 한번도 한글을 공용문서로 채택하지 않았고 이류문자 취급했으나 그럼에도 한글은 널리 퍼져 결국에는 순한글 전용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누가 이 한글을 확산시켰단 말인가?

15세기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왕실 여성들과 불교를 중심으로 사용됐고 궁녀들에게 퍼졌으며 대비들이 수렴청정 하는 과정에서 공식 문서로써 한글이 사용되어졌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권력자인 대비는 얼마든지 한자로 번역해 전교를 내릴 수 있었으나 한글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글이 곧 여성 문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점차 사대부가 여성들에게 한글이 퍼지고 가사와 소설 등을 통해 한글 사용이 확산되다가 기독교가 전해지면서 크게 발전한 점도 특기할 만 하다.

저자는 실사구시를 추구한 18세기 실학자들이 언문일치가 가능하고 민중에게 실용적인 지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한글 사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점을 비판한다.

따지고 보면 실학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성리학자들이 실용주의를 추구한 것이니 박지원이 한글을 몰라 누이와 편지 한 장 쓸 수 없었음을 안타까워 한 점도 이해가 된다.

가치관과 개념 체계가 전혀 달랐던 셈이다.

한글의 저변 확대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독서였다.


<오류>

242p

1674년에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비에 진봉되었다. ... 소생으로 명선, 명혜, 명안공주가 있다.

-> 명선, 명혜, 명안공주는 숙종의 딸이 아니라 누이들이다. 

305p

51세 때인 1809년(순종9)인 것으로 추정했다.

-> 1809년은 순종이 아닌 순조 9년이다.

355p

숙종 10년인 1694년에는 경안군의 부인 허씨가 언서로 종부시에 단자를 올려, 임금의 둘째 아들 이엽의 혼사를 홍구서의 딸과 할 수 있도록 청원하였다.

-> 이엽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 소현세자의 막내아들인 경안군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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