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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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마음을 훅 끌어들이는 책이다.

6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때문에 선뜻 읽지 못하고 미뤄 두다가 연말이 가기 전에 드디어 완독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고 평이하게 잘 읽힌다.

별점을 4개 주나 5개 주나 고민을 좀 했는데 일단은 2021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이라 5개를 준다.

(2020년에는 팩트풀니스가 최고였다)

지금으로부터 한 10여 년 전에, 기후 변화가 거짓 선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북극의 빙하가 녹아 버리고 북극곰들이 멸종할 것만 같았는데, 그 책에서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기온 상승을 과장시켜 말하고, 이것을 정치인들이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에 대해서, 더군다나 기후 변화 같은 어려운 주제는 내 머리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 지구 온난화가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절대적인 주류 과학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원자력 폐기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한다.

이 책에 따르면 원자력은 탄소 중립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고 최고의 효율성을 지닌 고밀도 에너지이다.

환경을 위해서, 넘쳐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보다 더 값싸고 확실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원자력 발전을 두려워 하는 것은, 원자폭탄 이미지와 겹쳐져서 생긴 지나친 공포심이라고 한다.

오히려 핵무기는 가장 강력한 전쟁 억제책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공포심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근본 주제는,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값싼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 것이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 충분한 에너지를 누리고 있는 선진국의 환경주의자들은 개발도상국에게 환경보호를 내세워 신재생에너지라는 효율성이 매우 낮은 공급 방식을 강요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수요를 낮추자는 주장은 실현 불가능하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번 정권에서 보여준 부동산 정책을 통해도 너무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누구나 돈을 벌면 "자기 소유의" 큰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집은 단지 거주하는 곳에 불과하므로 소유하려고 욕심내서는 안 된다는 정부 권고에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더 크고 안락한 집을 원하는 국민의 수요를 만족시키려면 많이 짓는 수밖에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같은 주장을 한다.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선진국 국민들이 누리는 만큼의 에너지를 원한다.

아무리 환경보호가 중요하다고 해도 아마존을 지키는 것보다 당장 편하게 샤워하고 하루 종일 전기가 공급되는 곳에서 사는 게 더 먼저라는 것이다.

과연 환경보호를 개도국에 강요하는 게 도덕적으로도 옳은 일일까?

저자는 오늘날 서구의 환경주의를 일종의 유사 종교로 보고 있다.

자연은 완벽하고 인간이 그것을 이기적인 욕구 때문에 망가뜨리고 결국에는 지구가 망할 것이라는 일종의 기독교적 종말론과 유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환경 휴머니즘을 주장한다.

"환경" 보다 인격을 가진 인간 즉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자연을 관리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에너지를 누리고 편리한 삶을 영위할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고 단순한 규제가 아닌, 보다 나은 경제 성장을 통해 자연을 돌볼 여력을 갖는 게 더 먼저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무엇이 먼저인가?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더니 "내 사람"이 먼저고, 같은 동물이어도 더 평등한 동물이 있다는 동물 농장의 글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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