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1년, 안음현 살인사건 조선사의 현장으로 1
이상호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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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라 한 시간 만에 다 읽은 것 같다.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편한 책을 접했다.

표지 디자인도 눈에 확 띄고 제목도 인상적인데 내용은 다소 가벼워서 아쉽다.

아마도 저자가 학자는 아니라서 더 깊은 역사적 분석은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고,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실하게 쓴 점은 마음에 든다.

기찰 포교였던 네 명이 죄인을 잡기 위해 마을로 떠났는데 도적을 만나 두 명이 살해당하고 나머지 두 명만 살아 돌아온다.

대낮에 도적떼가 다른 사람도 아닌 관아의 기찰 포교들을 습격하다니, 안음현 현감 입장에서는 보통 일이 아니라 엄하게 이들을 문초한다.

도적떼가 나타났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현감은 동료 두 사람을 의심한다.

일반 백성도 아닌 포교들이 아무리 도둑떼를 만났다고 해서 두 명이나 살해를 당했는데 나머지 두 사람은 멀쩡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잡아온 범인도 중간에 놓치고 이 범인이 살해당한 포교들에게 뇌물까지 줬다는 진술이 나오니 현감 입장에서는 가까운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학적 수사기법이 없을 때이니 의심가는 정황을 사실화 하려면 고문을 해야 한다.

다른 합리적인 추론이나 증거가 없으면 용의자가 자백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차 수사에서 현감은 두 사람이 공모하여 잡으러 갔던 죄인이 이들에게 건네 준 돈을 훔치기 위해 나머지 두 사람을 살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고문이 행해졌고, 2차 수사 즉 동추가 이루어졌는데 전혀 새로운 사람, 다른 지역의 수령이 와서 다시 신문을 하고 똑같은 결론을 내린다.

살인 사건이므로 그 위의 지방관이 다시 3차 신문인 고복을 행하고 그 과정에서 용의자 중 한 명은 사망하고 만다.

경상감사가 최종적인 4차 신문을 마친 후 왕에게 상고해 재가를 맡고 사형이 집행된다.

4개월 동안 두 사람은 살해당하고 한 사람은 옥중 사망, 한 사람은 사형, 결국 범인 잡으러 기찰을 나갔던 이 네 사람이 전부 죽게 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유학의 나라였던 조선은 생명을 중시하여 한 사람의 원혼도 남지 않게 철저히 조사하고 사형을 구형할 때는 3심까지 거쳐 최종적으로 왕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였는데 문제는 그 과정이다.

지금도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히기가 쉽지 않은데 전문적인 법관이나 형사도 없었을 당시에 형법서를 따로 읽어보지도 않았을 지방관이 이런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무척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은 의심가는 정황이 있으면 용의자들이 자백하는 수밖에 없고 순순히 내가 그랬소, 할 사람이 없을 테니 고문은 필수인 셈이다.

감옥의 환경도 열악하여 신문 도중에 죽는 경우도 많았다.

오늘날의 인권과 당시 조선 사회의 생명 중시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던 듯하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라는 것도 결국은 높은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시혜를 베푸는 일방적인 관계이지 오늘날처럼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당시의 가치관을 현대 사회에 함부로 대입하는 것도 매우 신중해야 할 것 같다.

한 사람의 억울한 원한도 남기지 않기 위해 살인 사건의 경우는 초동 수사 외에도 세 번이나 다른 수령에 의해 신문이 진행되었으나 결론에 끼워 맞추는 것이고 죄인이 순순히 자백해야 마무리가 되므로 고문은 필수였다.

오늘날의 재판 제도처럼 증거를 다시 찾고 변호사가 있어 용의자 입장을 변론해 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좋은 취지의 제도가 오히려 사람을 더 괴롭히는 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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