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찰스 핼퍼린 지음, 권용철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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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별로라는 평 때문에 약간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내용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막연하게만 그려지던 킵차크 칸국이라는 실체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랄까.

여전히 복잡한 연대기적 이름이나 왕위 계승 관계는 헷갈리고 모호하지만 러시아를 지배한 몽골곡의 실체, 그리고 그들이 러시아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은 잡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번역은 아무대로 직독직해 보다 의역이 나은 듯하다.

번역투의 수동태 문장이나 복문들은 안 그래도 내용이 생소한데, 눈에 한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 책의 제일 인상적인 주장은, 러시아가 몽골 울루스의 직접적인 지배 영토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일 칸국의 페르시아나 원나라의 중국과는 달리, 킵차크 칸국의 러시아는 몽골족이 도시에 정주하면서 직접 지배한 것이 아니고 초원에 머무르면서 간접적으로 세금만 징수를 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페르시아와 중국에서 몽골족이 쫓겨난 후에도 러시아에서는 100년이나 더 오래 지배를 받게 된다.

간접지배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일까?

몽골족은 러시아의 도시로 들어가는 대신,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초원에 머무르면서 관리를 보내 가혹한 세금을 징수했다.

이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러시아 공국의 여러 귀족들은 자신들의 토지 대신 농민들에게 더 징수해서 총 할당량을 채웠고, 이런 이유로 몽골 지배하에서도 귀족층은 부유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교역로가 확대되면서 무역을 통해서도 돈을 벌고, 몽골의 원정대에 참여하여 전공을 나눠갖기도 한다.

착취를 당한 것은 농민들이었고, 여러 공국의 지배자들은 몽골에게 세금을 바치는 대신 자신들의 영토에서는 부유함과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일종의 외국 왕을 정점으로 한 봉건제 느낌이 든다.

몽골이 물러간 이후에도 이런 가혹한 수취 체제는 계속 유지되어 모스크바 공국은 농노제와 전제정치를 시행하고 농민들을 수탈했고 그런 부유함을 배경으로 러시아 전역을 통일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서구와는 다른 농노제나 전제주의가 반드시 몽골의 유산이라고는 하지 않고, 다만 러시아 내부의 자체적 발생 과정에 몽골 행정 체제가 약간의 자극을 줬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간접 지배 형태였기 때문에 러시아 공국 내부에서는 몽골에 의한 지배를 가시화 시키지 않고 모른 척 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지배계층은 몽골과의 접촉을 통해 속박되기도 하지만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전근대 사회에서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오늘날의 애국심 관점으로 모스크바 공국 지배자들을 재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모스크바 공국이 킵차크 칸국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러시아 내부의 구심점이 되고 전투를 통해 이들을 물리치면서 비로소 통일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들은 몽골족이 약화된 후에도 여전히 칭기즈 칸의 권위를 주변 유목민들에게 활용했지만 표트르 대제의 천도 이후 비로소 유럽 사회로 완전히 동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초원을 서구식으로 점령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들이 아주 흥미롭게 서술되어 인상깊게 읽은 책이고, 책 디자인도 개성적이며 안의 삽화들도 총 천연색이라 책 자체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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