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압력 - 불멸의 인물 탐구
샤리쥔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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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페이지가 넘는 책이고 중국 번역서라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리뷰평이 좋아서 읽게 됐다.

처음에는 너무 미사여구가 많고 감정의 과잉이 느껴져 읽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대충 넘기다 어느 순간에 확 빠져 들었다.

너무 너무 성실한 저작이고, 한시가 담고 있는 깊은 정감을 역사 속에서 풀어낸다고 할까.

우리나라 저자들이 해석한 한시와는 어쩐지 다른 차원의 깊이감이 느껴진다.

역시 자국 역사가들의 해석은 따라가기 힘든 듯하다.

사실 위대한 문학가들의 시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도연명이나 이백처럼 널리 알려진 이들의 시는 배경지식이 있어서인지 실제적으로 와 닿은 반면, 맨 첫 장의 굴원 부분은 집중하기가 좀 힘들었다.

너무 먼 옛날 사람이라 그런 것인가 싶다.

위대한 시인들도 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가며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 작품을 남겼다.

천재들도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에 겨웠던 것이다.

도연명은 전원으로 떠나고 이백은 그토록 열심히 자신을 홍보했지만 결국은 황제에게 버림받았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말할 것도 없고 학자가 곧 관료인 중국에서도 권력과 예술혼을 한 손에 다 쥐기는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조조 한 사람은 예외인 듯하다.

건안골풍으로 유명한 조조의 시 세계를 분석한 글이 인상적이다.

위대한 영웅이 위대한 예술혼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아버지 조조 뿐 아니라 아들들까지 시문학에 이름을 올렸으니 과연 대단한 집안이다.

조조가 죽기 전 남긴 유언이 인상적이다.

금은보화는 부장할 필요 없고 평소 입던 옷에 염하고 내가 거느리던 부인과 가인들은 동작대에서 제사 지내면서 먹고 살 수 있게 잘 보살펴 달라는 말.

너무나 인간적이다.

후대 사람들은 조조가 기껏해야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이 비첩들 안부나 챙겼다고 비난하던데 모시던 이들을 순장하던 명나라 황제들에 비하면 얼마나 인간적이고 정감있는 영웅인가.

저자의 평대로 조조의 위나라가 계속 이어졌다면 조조는 창업군주로써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 같다.

지금처럼 소설 속의 악역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황제라는 절대 권력자 앞에서 모든 신하는 그에게 쓰임받기를 원하는 비첩의 심리를 지녔다는 분석이 날카롭다.

유교 사회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오직 그의 사랑을 추구하며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남자 역시 밖에 나가서는 한 사람의 주체적인 인격이 되지 못하고 벼슬을 얻기 위해 황제를 향해 애정을 갈구한다.

정철이 사미인곡에서 열심히 왕을 연모한 것이 혹시 지나친 정치적 해석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벼슬 외에는 포부를 펼칠 길이 없던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 모든 선비들의 일관된 꿈이 바로 왕의 총애를 얻어 관직을 얻는 것 뿐이었음을 새삼 알게 됐다.

저자는 이백의 일생을 통해 황제의 총애에 목말라 하는 비첩의 심리를 너무나도 잔인하게 파헤친다.

그럼에도 아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백은 천재적인 예술혼을 지녀음에도 결국은 정치판에 기용되지 못한다.

도연명 역시 허리를 계속 굽히지 못하고 결국은 전원으로 퇴거하고 만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위안하고 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으니 위대한 시인들은 어떤 역경에도 예술혼을 꽃피우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천재들임이 분명하다.

이런 천재들도 견디고 살았으니 나도 불평은 그만하고 더 열심히 인생을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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