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제 - 중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카와 고지로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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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나미 문고의 번역본인 AK 시리즈는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판형이면서도 내용은 알차고 번역도 비교적 매끄러워 쉽게 접할 수 있어 참 좋다.

주제를 좁게 잡아 전문적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준이 담보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다는 게 장점이다.

살림문고 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시리즈라 생각된다.

일본의 중국학 서적들은 서구 학계의 관점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고 그래서 신선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 중 한 명일 듯한 한 무제이다.

단순히 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평전에 그치지 않고 한 무제가 중국 역사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기술한 점이 인상적이다.

유학을 국교로 세운 것은 널리 알려졌지만, 단순히 사상적 통일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주재자로써 권력 뿐 아니라 권위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무력을 앞세운 진시황의 진 제국이 곧 무너진 반면, 무제 이후로 중국의 황제는 서양과는 다른 진정한 전제군주가 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그의 호전적인 성격으로 서역과 남월 등으로 국토가 넓어졌고 그 배경에는 물론 선대 황제들이 닦은 부유함이 기초가 됐지만 역시 구슬을 꿴 것은 무제 본인의 역량이었다.

당시만 해도 쉽게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것일까?

누이 평양공주의 노비였던 위자부가 정식 황후가 되고 그의 오라비 위청이 전공을 세워 식읍을 받았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들린다.

창읍왕을 낳은 이부인 역시 한낱 가객에 지나지 않은 이언년의 누이였고, 후궁의 출신이야 미천할 수 있다지만 그의 형제인 이광리가 장군에 임명되어 원정을 떠난 예도 그렇다.

심지어 평양공주는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 해도 자기 집안의 노비 출신이었던 위청과 재혼하기까지 한다.

공고한 신분제가 아직 뿌리를 내리기 전인 고대 사회라 가능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일부종사라는 미명하에 과부의 재혼을 막은 성리학의 교조주의는 얼마나 인간성을 파괴시켰는가.

무제는 유교 경전을 국교화 시킬 정도의 확고한 유학인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주술적인 신비주의가 같이 있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어쩌면 이제 막 유학이 자리잡는 고대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봉선 같은 제천 의식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유학과 신비주의의 습합을 통해 나온 현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고의 변으로 첫째 황후인 진아교와 둘째 황후인 위자부와 여태자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가능했으리라.

오늘날 우리가 단순히 주술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목숨을 좌지우지 했던 것이다.

확실히 고대인은 현대인과 다른 정신 세계를 가진 것 같다.

중국 역사에 혁혁한 발자취를 남긴 영웅적 군주에 대한 흥미로운 평전이었다.

번역자의 각주도 아주 꼼꼼하다.


<오류>

곽광은 형 곽거병보다는 외숙부인 위청을 닮아 독실하고 중후한 인품의 소유자이면서도

-> 위청의 여동생 위소아가 곽중유와 결혼해서 낳은 이가 곽거병이고, 곽광은 곽중유의 다른 처가 낳은 아들이므로 위청의 친조카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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