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후의 반역 - 광해군대 대비폐위논쟁과 효치국가의 탄생
계승범 지음 / 역사비평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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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중종의 시대를 재밌게 읽어 이번 책도 기대를 했고 제목도 흥미롭다.

<모후의 반역>이라고 하니, 막연히 아들의 권력을 탐한 대비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인수대비나 문정왕후, 정순왕후 같은 수렴청정 했던 대비들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뜻밖에도 광해군 시대의 인목대비 폐위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목도 인상적으로 잘 지었고 표지도 눈에 확 띈다.

내용은 꼼꼼하게 사료를 인용한 덕에 나같은 평범한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지루한 면도 있으나 광해군 시대와 17세기를 기점으로 주자학 일변도로 변하게 된 효치국가 조선에 관한 흥미로운 저작이라 생각한다.

좋은 역사서는 단순히 사료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이런 자료는 위키백과만 봐도 금방 찾을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이 갖는 시대적 의미와 전체적인 사회 구조를 해석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교양서들이 많이 발간되면 좋겠다.


광해군 시대라고 하면 책에 나온 바대로 중립외교를 잘 했으나 사대주의자들에게 쫓겨난 불행한 왕이라는 평가와, 근래 들어서는 토목공사 등으로 민생이 파탄되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양립한다.

저자는 반정의 중요한 명분이었던 대비 폐위에 집중한다.

보통 대북 세력의 전횡으로 폐모살제를 강행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정국을 주도한 이는 광해군임을 밝힌다.

조선시대 왕이라는 존재가 신하들에게 끌려다니는 무력한 군주는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불행을 맞아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닌 광해군이 세자위에 오른 후 분조를 이끈 경험은 부왕 선조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명나라 내부 사정 때문에 광해군의 세자 책봉은 무려 다섯 번이라 거절된다.

태종처럼 과감성 있게 신하들을 휘어잡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광해군은 16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가슴 졸이며 아버지의 냉대를 참았고 드디어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추숭 문제는 비단 광해군 뿐 아니라 여러 왕들에게서 보였던 행태 같다.

성종도 아버지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숭했고 훗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도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숭했다.

멀리 명나라에서도 가정제가 아버리 흥왕을 황제로 추숭하기 위해 신하들과 격론을 벌였고 다들 승리했다.

그런 의미에서 후궁인 어머니를 공성왕후로 추숭하기 위한 광해군의 노력이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는 것 같다.

정통성이 워낙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다만 전후 사회 안정을 시켜야 할 때이고 더군다나 후금의 흥기로 국제 정세도 불안정할 때에 무리한 궁궐 건축과 더불어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인 점은 결국 정권 찬탈로 귀결되고 만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고 보면 무수리 출신 어머니를 둔 영조가 형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즉위해 무신란을 평정하면서 신하들을 압도하고 52년간 재위한 것은 영조 자신의 놀라운 정치력 덕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시대도 물론 안정적이었지만 말이다.

유교 국가, 더군다나 교조주의적 주자학을 신봉하는 조선에서 반역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모후를 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하다.

광해군의 극심한 컴플렉스가 아니었다면 무리하게 서궁에 유폐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폐위 시도가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부르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충의 개념으로 사적인 의리를 얼마든지 폐할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간단히 말해 국가에 반역한다면 사적인 혈육의 의리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선에서 신성시했던 주자도 충을 먼저 내세웠다.

광해군이 폐위된 후 명나라를 배신한 것을 응징하겠다던 인조는 오히려 청에 신속하는 바람에 반정의 주된 명분은 불효한 것이 되버렸다.

조선은 이제 진정한 효치국가가 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충이라는 공적 개념 보다 붕당이라는 사적 의리를 우선시 하게 된 배경으로 본다.

조선은 진정한 국민국가로 재탄생하지 못한 셈이다.

숙종과 영정조 시대의 왕권 강화는 단순히 왕이라는 존재감만으로는 안 되고, 사부, 즉 왕이 신하들을 압도하는 지식까지 갖추어야 가능했다고 본다.

이런 관점이 신선하다.

그러니 정조 이후 어린 왕의 즉위는 결과적으로 특정 가문이 전횡하는 세도정치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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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yox 2021-07-1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독자는 아니신듯.. 지식과 앎의 깊이가.. 상당한 듯합니다..
저는 이 책을 아직 못 읽었습니다만.
저자의 전작들을 좀 읽어서 기대되는 바인데..
너무 자세하게 평을 하셔서 ㅠㅜ..
저같은 사람이 진짜 평범한 독자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