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의 탄생 - 끔찍했던 외과 수술을 뒤바꾼 의사 조지프 리스터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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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흥미롭지만 외국에서 번역된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된다.

일단 유명한 역사적 사건들이 아니라서 잘 모르는 특별한 케이스들이 많아 보통은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지루한 일화나 연대기 나열이면 어쩌나 싶고 아무래도 번역서이다 보니 가독성 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수술의 탄생이라니,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빌린 책인데 읽은 소감, 아 정말 세상에는 왜 이렇게 재밌는 책이 많을까!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 대답은 120% 재밌기 때문이다.

너무너무 재밌어서 읽지 않을 수 없다.

독서만큼 돈도 안 들면서 무궁무진하게 즐거움을 넓혀갈 수 있는 취미가 또 있을까 싶다.

유튜브에 뜨는 동영상들도 중독을 걱정할 만큼 자극적이고 재밌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때의 충만감과 즐거움에는 감히 미치질 못한다.

활자의 시대가 가고 영상의 세상이 온다고 하지만 여전히 책은 영상물에 비하면 훨씬 깊이있고 강렬한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책의 주제는 그냥 의학의 역사가 아니라 "외과", 즉 수술하는 과의 역사이다.

의학을 크게 보면 약 처방하는 내과와 직접 병변을 절단하는 외과로 나눌 수 있는데 당연히 일반인의 눈에는 외과가 훨씬 극적이고 현대의학의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선호한다.

당장 의학드라마를 봐도 내과 의사가 주인공인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잘생긴 선남선녀들이 수술복을 입고 메스를 들고 환자의 병변과 사투를 벌인다.

처음에는 이 외과의가 일종의 기예를 뽐내는 장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인 것이, 마취제도 아직 발명되지 못하고 절단 후 감염 관리도 안 돼서 신체를 잘랐을 때 보다 회복 과정에서 패혈증으로 죽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왜 나이팅게일이 병동과 환자 관리를 수치화 하여 간호의 필요성을 역설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심지어 신체를 절단하는 외과 수술은 마치 공개 처형을 보듯 일반인들에게 관람의 대상이었다.

당장 렘브란트 그림만 봐도 툴프 박사의 해부학 실습 때 여러 사람이 모여 구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동양과는 매우 다른 문화임이 확실하다.

신체 훼손을 금지하는 동양과 직접적으로 살아있는 환자에게 칼을 대는 서양은 본질적으로 아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당연히 사체를 해부하고 직접 환자의 병변을 절단하는 의료 문화 속에서 외과는 발전할 수 있었다.

물론 감염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고 심지어 항생제도 만들어지기 전이라 수술받는 환자들의 예후는 처참했다.

끔찍한 사례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런 희생 속에서 오늘날의 의학 발전이 가능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역사의 발전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시대배경이 1840년대부터인데 겨우 이 정도의 의학수준이었다면 조선 말기에 한반도로 건너온 선교사들의 의료 수준도 높지는 않았을 듯하다.

아니면 그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을까?

아편전쟁 후 청나라에 쳐들어간 서양인들은 공개처형을 시행하는 중국 문화의 야만성에 기겁을 했다는데, 영국에서도 공개처형은 판결받는 즉시 법원 바로 옆에서 거행되었다.

왜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지는 게 끔찍한 형벌이었는지 실감이 안 됐는데 책을 보니 확실히 이해가 된다.

배에 실려 가는 과정이 너무 끔찍해 1/3이 사망했고 20여 년의 긴 형기를 마친 후에도 영국으로 돌아가길 거부할 정도로 항해가 험난했다고 한다.

세상은 적어도 인권과 생산력 면에서는 진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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