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사람들 히스토리아 문디 9
아일린 파워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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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표지에, 주제도 흥미로워 기대한 것에 비해서는 약간 지루했다.

저자가 무려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고 여자였다니.

옮긴이 서문에 나온 저자의 일생이 더 흥미롭다.

왕조 정치 이야기가 주인 시대에 평범한 개인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했다는 점이 신선하다.

특히 중세 시대에는 거의 가리워져 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듯하다.

저자는 열 살이나 어린 자신의 학부생과 결혼했고 안타깝게도 51세라는 한창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말았다.

여성 역사학자가 드문 시대에 이렇게 훌륭한 주제를 놓고 책을 쓰던 중 갑작스레 사망했으니 안타깝고 그래도 한 권의 책으로 남아 후대 사람들이 이렇게 읽을 수 있으니 다행스럽다.

중세의 여인들이라는 책도 나왔던데 같이 읽어봐야겠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들

1) 60이 넘어 열 다섯 살의 어린 여자와 재혼한 남편이 아내에게 남긴 글이 나온다.

낭만적인 사랑이란 정말로 근대의 발명품인 모양이다.

개인의 존재가 희미했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결혼도 일종의 계약이었던 게 분명하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파트너를 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열 다섯의 이 어린 아내도 자신을 위해 돈을 벌어 올 60대의 남편과 결혼했고 대신 남편에게 내조라는 서비스를 하고 집안을 돌본다.

재밌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 먼저 죽고 어린 아내는 재혼을 할 것이므로 전남편이 제대로 못 가르쳤다는 말을 안 듣기 위해 자상하게 이것저것 알려준다고 글을 썼다는 것이다.

정말 서양 사회니까 가능한 상황 같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 오고 여자는 집안을 관리하고 남편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최대한의 서비스를 해 준다.

여기에는 육아와 성적인 부분도 포함됐을 것이다.

남녀간의 이런 분업 시스템이 수천 년간 유효했으나 21세기에는 이제 각자 자기 자신을 책임지면서 사랑을 매개로 동등하게 결합하는 걸로 바뀐 듯하다.

정말로 이제는 페미니즘이 구호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싶다.


2) 저자는 로마 제국의 쇠퇴 이유로 인구 감소를 꼽는다.

2천 년 전에도 출산율 감소가 제국의 쇠퇴 원인이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국경을 지키기 위해 게르만족 같은 이민족들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로마는 멸망하고 만다.

왜 로마 사람들은 점점 자식을 안 낳게 되었을까?

딱히 상세하게 기술하지는 않았지만 이민자를 받아서라도 인구를 유지해야 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아 신기했다.


3) 수녀원은 귀족 여자들이 사회적 커리어를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성의 안주인이 되지 못한 딸들은 기부금을 들고 수녀원으로 들어가 공부도 하고 수녀원을 운영했다.

이런 독신자 제도는 동아시아와 매우 달라 신기하다.

아무리 불교가 국교였다 할지라도 여성의 출가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듯한데 수녀원 제도가 귀족들을 중심으로 이렇게 활발하게 유지될 수 있었나 싶다.

당연히 이 수녀원은 신앙으로서가 아니라 직업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지금 생각하는 엄숙한 기도처가 아니었던 것이다.


4) 중세 농노들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평생 일만 하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교회에 모여 춤을 추고 절기마다 축제를 즐겼다.

우울증은 현대인에게나 해당되는 질병이라고 한다.

변화가 적은 만큼 고민거리도 적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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