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결혼과 출산 문화 국학진흥원 교양학술 총서 - 고전에서 오늘의 답을 찾다 1
박희진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사업팀 기획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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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조선 시대 결혼과 출산에 관한 일화들 모음 정도로 생각했는데, 인구학 쪽 이야기라 더 의미가 있었던 책이다.

150 페이지 정도의 짧은 책인데도 조선 시대 출산률과 인구 변화에 대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어 조선이라는 사회 구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아마도 저자가 경제를 전공한 분이라 접근법이 다른 느낌이다.

서문에서 한국의 저출산에 대한 해법을 조선 시대에서 찾아보자는 말이 있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인구를 늘리기 위한 핵심은 결혼을 빨리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영업을 안할 때는 인구가 줄어드는 게 왜 문제인지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그냥 막연히 인구가 줄면 생활 공간이 넓어져 쾌적해지고 경쟁도 줄어드는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영업자가 된 후부터는 인구야말로 내수 경제의 핵심이고 일자리 창출의 기본이라는 걸 뼈저리게 인식하게 됐다.

왜 인구가 힘이라고 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된다.

아이들 관련 일을 하는 내 입장에서 느끼기로는, 결혼을 일찍 하면 둘, 셋 낳을 가능성이 커진다.

늦게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불임률이 높아지고 하나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도 이런 이유로 조혼이 성행했다고 한다.

빨리 결혼해서 후사를 보고 싶기 때문에 남자들의 초혼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대신 여자는 가임기여야 임신이 가능하므로 19세기 말까지도 초혼 연령이 평규 17세로 일정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때 오히려 연상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나 보다.

두세 살 많은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는 초혼 연령이 24,5세로 조선보다 훨씬 높았는데, 그 까닭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생활해야 결혼이 가능했기 때문에 만혼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식이었다.

그런데도 유럽의 1인당 출산율이 조선보다는 훨씬 높았다는 점이 신기하다.

조선은 평균 5명인데 비해 유럽은 9~10명에 이른다.

조선은 일찍 결혼하고 심지어 혼인율이 100%에 이르는데 왜 출산율은 떨어지는 것일까?

저자는 조선의 여인들이 빨리 죽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대를 잇기 위해 남성들도 어쩔 수 없이 재혼, 삼혼을 해야 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조선은 축첩 제도 때문에 한 여성이 아닌 여러 여성에게 자손을 봤기 때문에 일부일처가 기본인 유럽에 비해서 한 배우자당 출산율이 줄어드는 건 아닐까?

또 주자학이 하층민들에게까지 내려가면서 성적 터부가 강해지고 양반은 시묘살이 3년간 성관계가 불가했던 탓에 출산율이 더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인구학 자료를 볼 것도 없이 조선 후기 왕실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조선 전기에는 왕비들이 다산했던 데 비해 후기로 갈수록 정비에게서는 물론이고 후궁에게까지 자손을 얻기 어려워져 후계자선정에 애를 먹는다.

참 희안한 게 혼인의 목적 자체가 오직 남아를 생산하여 대를 잇는 것인데도 왠 성적 금기가 그리도 많았던 것인지.

남아를 얻기 위한 온갖 미신들이 난무하고 치성을 들이는 대신 자주 합방을 했으면 해결됐을텐데 뭔가 조선은 여러가지로 모순적인 사회였던 듯하다.

조선의 인구 변화와 혼인 문화에 대해 알아 본 좋은 시간이었고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해법이라면 가임기 여성이 빨리 결혼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당장 나만 해도 서른 네 살에 결혼해 연년생으로 둘을 낳았는데, 일찍 결혼했다면 셋째도 낳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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