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역사 -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하고도 거대한 힘
임용한.김인호.노혜경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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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양 역사서의 표본이 되는 책 같다.

너무너무 재밌다.

우리가 역사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단순한 사료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저자의 역사적 평가와 해석일 것이다.

대중 역사서는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흥미 위주로 쓰여지거나 아니면 어제 읽은 <자금성의 노을>처럼 지루하게 사료만 나열하는 두 경우가 제일 많은 듯하다.

임용한씨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역사가로서 저자의 해석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 당시 사회 현상과 비교해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짚어준다.

평범해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정말 재밌다.

책 표지도 좀 바꾸고 제목도 좀더 임팩트 있게 지었다면 훨씬 더 많이 알려졌을텐데 너무 아쉽다.

제목만 보고 단순히 뇌물받은 사례들을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나 했는데 역시 저자가 이름값을 하는 느낌이다.

국가가 존재한 이래 뇌물이 왜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대 사회가 전근대 보다 투명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심성이 착해지거나 도덕적으로 진보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관리 시스템이 발달해 사적 거래를 공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제도의 발전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아전들이 양민을 착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가에서 따로 월급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는 양민들에게 수수료를 징수하여야 생계가 가능한 구조였는데 문제는 이 시스템이 공정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관이 사회를 장악했던 조선시대에 자의적인 수탈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는 제도적으로 수수료를 책정하여 아전에게 월급을 주지 않았을까?

저자는 전근대 사회에서 이런 제도적 시스템을 도입하기에는 생산력이 너무 낮고 관리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시대적 한계였던 셈이다.

국가가 중농주의를 추구하고 상인들을 억압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시대는 수요만 있다면 공급이 거의 무한정에 가까울 정도로 생산력이 받쳐 주는 반면, 전근대 사회는 공급이 경직되어 상인들이 너도나도 물건을 사들이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버린다.

기술발전이 거의 불가능했던 전근대 사회의 생산력 한계 때문에 국가에서는 생산을 장려하고 상인들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가 상업을 통제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인들은 관에 뇌물을 바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뇌물이나 부정부패가 많을 것 같지만 그 규모가 크다 뿐이지 오히져 전근대 사회가 일상의 뇌물이 만연했다는 느낌이 든다.

구조적으로 시장이 아닌 사적인 선물경제를 통해 물자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탐욕을 공평하게 조정한다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창의력을 억압하여 생산력 증대에 실패했고, 무엇보다 사회를 장악해서 똑같이 분배하는 더 큰 세력, 즉 공산당의 부정부패 때문이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왜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산국가에서 반드시 독재자가 출현하고 인민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런 좋은 역사서가 많이 발간되서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너무 재밌다!


<인상깊은 구절>

97p

 이 시대의 귀족이란 기본적으로 높은 관직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거나 사람들에게 '귀족다움'을 보여야 했다. 관직 외에 귀족다움을 과시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교양, 즉 문학이었다. 글과 학문에 뛰어난 재능은 사회적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더구나 문학은 군벌이 권력가의 행세를 하는 시대에는 그들과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기회일 수 있었다. 도연명이 사회적 존재감을 높일 수단은 이제 문학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줄 명작을 지었다. 벼슬길에서 은거로 방향을 튼 후의 감회를 쓴 <귀거래사>였다.


"바라건대 세속적인 교제를 그만두련다

세상과 나는 서로 맞지를 않아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하랴

친척들과 정 넘치는 이야기에 기쁘고

거문고와 책을 즐겨 걱정을 달랜다

부귀도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고

천국도 기대할 수 없으니

좋은 시간이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를 세워두고 김을 맨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타고 목숨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다시 의심하랴"

 

 이 시는 이후 중국과 조선에서 현실에 지친 모든 선비들을 위로했다. 그의 이르믄 한자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정신적 영향을 미쳤으며 시를 짓는데 영감을 주엇다.


<오류>

57p

제안대군(예종의 아들, 갓난아기일 때 예종이 사망하는 바람에 왕위가 삼촌인 성종에게 넘어갔다)

-> 성종은 제안대군의 삼촌이 아니라 사촌형제이다.

125p

그러나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 산욕열로 사망한 딸은 공혜왕후가 아니라 언니인 예종비 장순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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