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투쟁기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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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주제이긴 한데 내용은 평이한 느낌이다.

크게 공감이 안 가고 확 끌리는 내용이 아니라 아쉽다.

책표지나 편집은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신선해서 좋긴 한데, 책에 관한 에세이로서는 그다지 재밌지가 않다.

이런 걸 보면 역시 포장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문장력이 좋은 에세이스트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몇 가지 공감했던 점들

1) 좋은 번역이 어려운 이유

번역서들은 그 나라에서 많이 팔린 이른바 검증된 책들을 번역해서인지 대체적으로 주제가 흥미롭고 내용이 괜찮은 책들이 많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역사책이나 사회과학 서적들은 거의가 번역서다.

그래서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이 간다.

책이 좋으면 대체적으로 번역도 매끄러운 경우가 많지만, 비문이거나 수동태 형식으로 번역되어 어색한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특히 번역가가 그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면 번역자 자신도 무슨 얘길 하는지 이해가 안 가서 제대로 번역을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성의없는 번역에 화가 났었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번역하는데도 굉장한 돈과 시간이 든다고 한다.

400페이지 정도의 책이 나오려면 적어도 1년에서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대체적으로 번역료는 4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번역가는 1,2년 동안 이 책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니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1억은 줘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 저작권이 소멸되어야 같은 책을 여러 번역가들이 출간할 수 있어 양질의 번역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작권법에 대해서도 저자는 부정적이다.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역시 뭐든 돈을 많이 들이고 경쟁이 있어야 양질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어 공용화론도 일견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고 구체적으로 저자가 비판해 마지 않는 복거일의 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저자가 잠시 인용한 복거일씨의 글을 보면, 영어를 잘하면 인식의 지평이 크게 확산된다는 게 사실 아닌가?

책에도 북경이나 동경 도서전, 혹은 유럽의 헌책방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외국을 나가면 서점에 들려 무슨 책이 있나 살펴보고 구입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언어의 한계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영어로 쓰여진 책은 더듬더듬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림이 많고 글씨가 별로 없는 화집 같은 걸 구매한다.

인터넷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쓰여지고 있는 시대에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미 나이가 들어 큰 의지가 없지만 적어도 지금 세대 아이들에게는 좀더 획기적인 영어 노출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비싼 돈 들여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만 영어를 잘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일종의 문화적 차별이 아닐까?

공교육에서도 더 많은 영어 노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저자는 인터넷 서점이 많이 팔리는 책들을 주로 노출시킨다고 비판했는데 내 경험상 이건 정반대이다.

전에는 나도 서점 가는 게 큰 나들이라서 외출할 일이 있으면 꼭 서점에 따로 들려 신간을 확인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예 서점을 가지 않는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정도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대형 서점들의 절반은 문구용품이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있는 공간들도 독서 공간 비슷하게 만들어 놓아 진열되는 책의 숫자들이 매우 줄었다.

특히 나처럼 덜 팔리는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신간 구경도 매우 어려워졌다.

아예 손이 잘 닿지 않는 윗서가에 배치해 놔서 어떤 책인지 꺼내 읽기도 어렵다.

책을 진열하고 소개하는 공간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반면 인터넷 서점에서는 훨씬 쉽게 책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추천 검색이 잘 되어 있어 관심있는 분야의 책들을 계속 보여준다.

전에는 신문 서평이나 책날개를 보고 새로운 책을 만나 봤다면 요즘에는 거의 인터넷 서점을 통해 고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서평도 읽어 볼 수 있어 아주 유용하다.

서점으로서도 온라인 서점에 대항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서점에 가면 고를 수 있는 책이 많지 않으니 더더욱 인터넷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저자는 좋은 책을 읽을 때의 기쁨을 놀이기구 탈 때의 말초적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정말 그렇다.

그런 즐거움 때문에 책을 읽게 된다.

단순히 지식을 넓히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읽는다기 보다 그 행위 자체가 너무너무 즐겁기 때문에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저자는 독서가 매우 내밀한 사적 취향이기 때문에 권장도서 같은 건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나도 일견 동의하는 바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어서 나에게 기쁨을 주는 책이 필요한 것이다.

항상 이런 독서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궁금한 게 도대체 장서가들은 책을 어떻게 보관하냐는 문제다.

나는 정말 책값이 전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책을 구입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보관할 공간이 문제다.

전에 읽은 어떤 장서가는 아예 창고를 임대해서 거기에 보관한다고 했다.

나도 혼자 살면 얼마든지 내 책으로 온 집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좁은 아파트에 가족이 살고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애들 책 보관하기도 힘들어 내 책은 구입을 안하고 있다.

그래서 E-book 이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

문학 분야는 활발하게 출간되는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내가 원하는 분야의 책들은 전자책이 거의 없어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도서관에서 빌리고 있다.

금방 전자책 시대가 올 것 같았는데도 여전히 종이책이 기본인 걸 보면 시대의 흐름이 일순간에 확 바뀌지는 않는 모양이다.


224p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하고 있듯이 모차르트는 비록 세속적인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으나 예술이라는 그 영혼의 세계에서는 항상 누구보다도 더 행복했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비탄에 잠겨 있을 때조차도 그는 결코 울부짖거나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은 언제나 명랑하고 경쾌한 듯이 보여 사람들은 흔히 그의 음악은 달콤하고 즐겁기만 한 것으로 오해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의 표면적인 즐거움 속에는 얼마나 깊은 오열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랴. 눈물이 방울진 채 웃음 짓고 있는 얼굴처럼 감격스러운 모습은 없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언제나 해맑게 흐르면서도 그 밑바닥에 연연히 흐르고 있는 우수의 그림자로 인해 우리를 순수하고 황홀한 슬픔으로 이끈다.

(이 문장은 너무 좋은데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세대가 함께 하기에는 너무 순수했던 한 지도자가 마지못해 저세상으로 떠나는 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부분은 공감이 참 어려웠다. 정말 우리 세대가 함께 하기에는 너무나 순수했던 지도자가 있기는 했었나? 나도 이 세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런 지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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