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를 캐는 사람들 - 발굴로 읽는 역사
김상운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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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내용일 것 같아 읽을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신간 코너에 있는 걸 못 지나치고 빌리게 됐다.

제목에서 보여주는 대로 고고학자들의 이야기, 국보가 어떻게 발굴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신문기자라는 한계 때문인지 마치 신문 기사처럼 보도 수준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직접 발굴에 참여하는 사람이었다면 훨씬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 줄 수 있었을텐데.

<최초의 인류> 역시 인간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아프리카로 날아가 고군분투하는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를 기자가 취재한 것인데 밀도면에서 너무 비교된다.

여러 유적지와 유물 발굴 당시 현장을 주도했던 고고학자들을 찾아가 당시 상황을 스케치 하듯 풀어간다.

역사 전공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나는 이런 현장 발굴자는 못 되고 문헌 연구에 치중했을 것이다.

고고학자와 사학자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고고학자는 문과보다는 이과 쪽, 공학도 느낌이랄까?

특히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대사는 더욱 현장 발굴이 중요한 것 같다.

통일이 돼서 북한 유적지 연구가 활발해지면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들이 많아질 것을 기대해 본다.

당장 2000년대만 해도 익산 미륵사지 서탑 해체 과정에서 사리기 명문이 발굴되어 절을 희사한 이가 설화 속의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의 딸, 사택 왕후였음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역사를 새로 쓰는 이런 과정이 고고학적 발굴의 묘미인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이, 몽촌토성 발굴자의 인터뷰였다.

몽촌토성은 한성 백제의 도읍지이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나온 바대로 1세기에 건립됐다고 알려졌으나, 주변에서 발굴된 중국제 토기 등을 근거로 3세기 무렵 지어졌다고 추정한 것이다.

다른 백제사 책에서도 이런 주장을 봤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삼국사기 기년이 200년 정도 앞당겨진 것인가?

흥미로운 대목이라 좀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중국과의 교류, 특히 동오에서 제작된 전문토기를 근거로 백제 초기부터 중국과의 해상 교류가 활발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과연 직접 배를 띄웠을까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긴 하다.

본격적인 교양서는 아니라서 더 자세한 논의가 없어 아쉽다.


마지막 편을 읽다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니,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기사 모음이었다.

신문 기사 수준이라 느꼈는데 정말로 신문 기사로 쓰여졌던 셈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으로서 통일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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