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 테마미술강의 003
알란 보우니스 지음, 하계훈 옮김 / 서울하우스(조형교육)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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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책이고 무려 1989년에 강의한 일종의 강연록인데 아주아주 유익하고 재밌다.

제목만 보면 약간 자극적이기도 하고 말을 위한 말, 관념적인 얘기가 될까 걱정했는데 예술이라는 창조 행위의 핵심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 줘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는, 골방에 갇혀 천재적인 창의력으로 위대한 작품을 남기지만 세상은 인정하지 않고 가난에 찌들려 오직 예술혼을 불태우다가 쓸쓸히 죽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 고흐와 고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들도 오래 살았으면, 즉 모네나 피카소처럼 8,90대까지 장수했으면 충분히 세상의 열광과 부유함을 다 맛 볼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창작의 절정을 이루는 불꽃튀는 생산성 있는 10년 동안 평론가의 인정을 받고 컬렉터와 화상들이 작품을 사 모은다.

이들은 서서히 대중들의 취향을 변화시켜 드디어 자신의 작품에 열광하도록 만든다.

저자는 그 시간을 대략 예술의 시작점으로부터 25년을 잡고 있다.

서양 사람인만큼 수치로 정확히 얘기한다.

반 고흐의 경우 27세의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고 주변 작가들로부터 인정을 막 받기 시작할 때 죽어버렸고, 그의 작품을 알려야 할 테오 역시 죽는 바람에 평가를 받는 데 10년이나 늦어졌다.

대신 일정 시간이 지나자 세상이 반 고흐에게 열광하고 오늘날 최고의 화가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80대까지 살았다면 모네나 피카소 같은 대중의 열광과 부유함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골방에서 외로이 죽어간 천재 화가는 낭만주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동료 집단과 평론가와 컬렉터들, 그리도 마지막에는 대중들까지,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은 결코 천재를 불행하게 끝까지 놔두지 않고 그 진가를 알아본다고 할까?

결국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고갱의 경우는 본인의 우울한 기질상 파리에 전시하지 않고 타히티라는 먼 곳으로 떠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그가 유럽에 계속 살았다면 훨씬 더 일찍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한다.

사실 사후에라도 이들의 위대함을 예술계에서 인정했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겠는가.

저자는 예술가의 성공을 저해하는 두 요소로 심리적인 것과 사회경제요인을 들었다.

조울증이나 알콜 중독, 불행한 결혼 생활 등등이 창의력을 저해할 것이고, 사회적 요인으로는 2차 대전으로 전쟁에 징집되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예술가들을 들 수 있다.

여러 예술가들을 받아들인 미국은 현대 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으나 정작 그 곳으로 이주한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고갈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짐작이 된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예술가를 숙련공과 구분한다.

간단히 말해 숙련공은 기술자이고 중산층의 가정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예술가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미술관의 벽면을 채우고 예술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20대 때부터 먼저 주변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동료들은 질투심과 경쟁심 때문에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을 수 있으나 어쨌든 재능이 뛰어남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게 된다.

이런 경쟁심이 분발하게 만들고 창의력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저자는 그룹을 만드는 단체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평론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들이 대가가 될 자질을 파악하면 이제는 컬렉터나 화상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된다.

창의력이 만발하는 이 시기를 대략 5~10년으로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중이 갈채를 보내는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생각보다 빨리 인정을 받는다는 것,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진짜 예술가는 결국에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

범인과 다른 천재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냥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만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천재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바로 위대한 예술의 본질인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92p

올더스 헉슬리는 "물론 대부분의 예술은 항상 부적당하거나 중요치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술적 재능은 극히 드문 현상이다"라고 썼다. 계속해서 헉슬리는 개인의 재능을 대신할 유일한 것은 훌륭한 예술적 전통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이것을 "살아 있는 서투른 예술가들에게 지시하는 훌륭한 죽은 예술가의 망령들"이라고 정의하였다.

 나는 헉슬리의 판단과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은 아주 보기 드문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척하고 모든 예술을 똑같이 유효한 것으로 취급하며 어떤 선택이든 간에 그것은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분명해지겠지만 나는 이러한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택의 과정이 냉정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대 미술품을 구입하거나 전시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고 심지어 그것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은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매우 선택적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들 직업의 초기 단계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들이 성공할 기회가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특별한 재능은 보통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고, 명성을 향한 그들의 진로는 내가 지적한 진행의 본보기를 따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발탁되기를 기다리며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 작업을 하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이 있다는 추측은 결코 신뢰할 수 없다. 위대한 예술은 그렇게 생겨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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