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권력 그리고 불화 - 고려와 조선의 왕실분화 석학인문강좌 94
김정희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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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창출판사의 <석학인문강좌>는 내용이 알차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쉽게 쓰여 아주 좋아하는 총서인데, 이번 책은 중언부언이 너무 많아 아쉽다.

주제는 흥미롭다.

보통 왕실의 불화라고 하면 불교국가였던 고려만 떠올리기 쉬운데 숭유억불의 조선에서도 왕실 발원 불화가 많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어 관심이 간다.

그런데 자료의 부족 때문일까?

2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도 같은 내용이 매 챕터마다 반복된다.

하도 자주 나오니 왕실에서 발원한 불화들의 이름을 외울 정도가 됐다.

저자가 강연 원고를 책으로 내다 보니 압축에 실패한 것일까?

어쩌면 이렇게도 같은 내용들이 계속 반복되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만큼 남아 있는 불화가 적은 탓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하다.


왕실 불화의 특징은 역시 높은 수준에 있다고 하겠다.

왕실에서 아낌없이 지원하다 보니 심지어 문정왕후 때는 순금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왕실의 화원들이 참여하여 그리는 수준이 매우 높고 재료도 아낌없이 지원을 받아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것이다.

나라에서는 불교를 억압했으나 권력에서 소외된 왕실 여인이나 종친들의 입장에서는 마음 둘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로 가면 상궁들의 재력도 풍부해져 많은 불사를 일으킨다.

지밀상궁 같은 높은 지위의 궁녀들은 영의정과 같은 최고위급 관료에 함께 시주하여 불화를 남겼다.

왕은 직접 절을 창건하는 큰 역사를 하고 왕실 여성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불화를 희사했다.

특히 과부가 된 대비들이 불화를 많이 발주했다.

그 중에서 인종비 인성왕후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관음보살32응신도가 아주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불화가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 소장되어 안타깝다.

아무래도 불교의 위상이 떨어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소장이 어려웠을 것 같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원당으로 지정한 용주사의 불화는 화승 상겸 등이 25인의 화사를 데리고 그렸다고 한다.

용주사 불화는 서양식 음영법 적용으로 유명한데 보통 김홍도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김홍도가 감동을 맡았다고 하고 직접 그린 이는 화승으로 본다.

후기로 갈수록 불화에도 서양식 음영법이 많이 적용되는 걸 보면 이미 서양화 기법이 많이 알려졌던 것 같다.

왕실의 불교 후원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오류>

7p, 157p

선조의 후궁 숙원 윤씨

-> 선조가 아니라 인종의 후궁이다.

36p

헌강왕 사망 후 왕비 권씨가 출가하여

-> 왕비는 의명부인이고, 권씨는 후궁이다.

42p

광해군비 장렬왕후(章烈王后, 1576~1623)가 광해군과 세자, 세자빈, 본인 및 작고한 친정부모~

-> 장렬왕후는 인조의 계비인데 한자가 다르다. 광해군의 배우자는 문성군부인이고 왕후로 추존된 적이 없는데 각주에 나온 논문에서도 장렬왕비로 나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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