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신비로운 성과학 이야기
로버트 마틴 지음, 김홍표 옮김 / 궁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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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생물학 책이다.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직업에서 알 수 있듯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화와 인간의 생식, 양육, 피임 등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생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인데도 정말 오랜만에 접하게 되서 새롭다.

단순히 인간의 생식 과정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장류의 진화라는 넓은 관점에서 설명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인간의 발생을 실험실에서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신 우리의 유인원 친척들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방식으로 추정하고 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내용들

1) 인간의 두뇌는 다 자라면 출생시의 네 배가 된다.

다른 유인원들이 두 배가 되는 것에 비해 훨씬 커지는 셈이다.

그래서 다른 포유류들은 낳자마자 걷는 조숙성 새끼인 반면 인간은 생존이 어려운 미숙성 신생아로 태어난다.

9개월 간 뱃속에 있다가 출생 후 1년 동안 두뇌를 키우는데 온 에너지를 다 쏟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임신 기간이 21개월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숫구멍이 돌 때까지 열려 있는 것도 두뇌가 더 자라기 위해서이고, 산도 통과를 위해 자궁에서 최대한으로 머리가 커진 후 극적인 출생 과정을 거쳐 1년 여 동안 열심히 두뇌 성장에 투자한다.

그 후에 비로소 젖도 떼고 걷기도 한다는 것이다.

직립보행으로 골반이 좁아졌고, 머리도 크기 때문에 태아는 다른 영장류와 달리 두 번의 회전을 통해 뒤를 보고 태어난다.

넓은 어깨도 출산시 위험 요소가 된다.

큰 두뇌가 이렇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2) 보통 생리주기는 생리 시작 후 여포가 자라는 여포기 2주와, 배란이 일어난 후 임신이 안 되면 황체가 퇴화하는 황체기 2주로 나뉘는데 가임 기간은 이 주기의 중간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러운 피임법은 바로 이 배란일 앞뒤를 피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생리주기 전 기간에 걸쳐 임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공수정 한 정자는 무려 10일도 생존할 수 있고 실제 배란도 이렇게 딱 맞춰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를 이용한 피임법은 실제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셈이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배란일을 피하려다 보면 오랫동안 남아 있던 기능이 떨어지는 정자가 수정되어 건강하지 않은 배아가 발생할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날을 찾을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교조주의적인 성리학 때문에 금기일이 늘어나 왕의 생산력이 떨어졌다는 책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가장 효과적인 피임법으로 마지막 장에서 경구용 피임약을 추천한다.

놀랍게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피임법은 정관수술이나 난관수술이라고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자궁내 장치나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경구용 피임약 보다는 물리적인 장치인 콘돔이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피임법 같다.

실패율이 3% 정도라는데 매일 잊어버리지 않고 약을 꼬박꼬박 먹는 것이나 수술 등에 비하면 용인할 만한 수치 같다.

가톨릭 등의 종교단체에서는 인위적인 피임을 반대한다고 하는데, 고작 성가대 조직을 위해 19세기까지 거세를 용인했던 조직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일갈이 시원하다.


3) 대부분의 내용은 중립적인 반면 모유수유 이점과 분유수유 문제점에 대한 강력한 주장은 전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모유수유의 장점은 널리 알려져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유수유가 어려운 환경에서 분유수유를 선택할 경우 과연 책에 나온 대로 온갖 문제점에 노출되는지는 의문이다.

하는 게 좋다와, 안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좀 다른 개념 같다.

나 역시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었던지라 첫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려고 유방 마사지까지 받으러 다녔지만 결국 실패했다.

둘째는 아예 포기하고 처음부터 분유로 키웠다.

젖이 안 나오는 어쩔 수 없는 경우들이 있고 무엇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유 수유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는 것은 확실히 감염 위험이 크지만 단지 분유를 먹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모유수를 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을까?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다, 하는 식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모유든 분유든 젖병에 넣어서 먹이는 행위는 애착 형성에 문제가 된다는 지적에는 전혀 동의하기가 어렵다.

주양육자의 안정된 보살핌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 아닐까?


진화적인 측면에서 임신과 양육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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