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최정동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관내 도서관에 없어서 책바다 통해 빌려 읽었다.

저자의 다른 책인 로마 유적지 기행문이 밀도 면에서는 더 나은 것 같다.

유홍준씨의 답사기가 감상 보다는 지식 전달에 중점을 둬서 읽고 나면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어 좋은 반면, 대부분의 기행문은 여행 루트 설명과 간단한 소회 정도라 읽고 나면 약간 허탈하다.

이 책도 아쉽게도 후자 쪽이다.

전공한 학자가 아니고 기자 출신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 같다.

그래도 고미숙씨의 열하일기처럼 과장되고 뜬구름 잡는 얘기는 없어서 열하일기라는 저작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라 사진이 흑백이라 아쉽다.

조선 시대 저작들을 읽으면 너무 당위적이고 관념적인 얘기들만 많아 감동이 크지 않았는데 이렇게 재밌는 기행문이 있었나 싶게 현대적이다.

그래서 정조가 깜짝 놀라 문체반정을 일으켰나 보다.

왜 박지원 등을 실학자라고 하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청나라의 문물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기술했다.

종이와 연필이 있어도 여행하면서 다 기록하기 어려운데 그 먼 길을 걸어가면서 붓과 벼루를 챙겨 열심히 글을 쓴 옛 사람들의 열정이 놀랍다.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그리고 다시 피서산장까지 가는 과정이 눈에 그려지고 그 길을 답사한 기행문이라 편안하게 와 닿는다.

항상 드는 생각이 중국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받았다면 당나라 때처럼 유학도 가고 문물교류가 활발했다면 조선도 훨씬 발전하지 않았을까?

명이나 청이 기본적으로 폐쇄적인 해금정책을 썼기 때문에 교류가 어려웠던 것인가?

아니면 전통사회가 오늘날 현대인의 생각보다 훨씬 더 폐쇄적인 닫힌 사회였던 탓일까?


<오류>

207p

방년 17세의 공주를 자신이 직접 찔러 죽인 뒤 자신도 생을 마감한 것이다.

-> 숭정제가 죽인 공주는 6세의 막내 공주였고, 17세의 공주는 팔만 잘리고 살아 남았다.

362p

송 원풍제 때 황제가 명을 내려

-> 원풍제는 처음 들어 본 황제라 누군가 했더니 송나라 신종 때 원풍이라는 연호를 썼다. 원풍제는 잘못된 표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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