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지방 사회의 재건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8
장경남 외 지음 / 새물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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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문서들이 많이 발굴되면서 미시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는 모양이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나온 시리즈물이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재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필자가 여러 명이면 중구난방 느낌이 많은데, 이 시리즈는 주제가 명확해서인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책값이 요즘은 많이 오른 모양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니까 책값에는 큰 신경을 안 썼는데 200 페이지 전후의 책이, 도판 한 장 없는데도 18000원이다.

많이 안 팔려서 비싸게 책정되나?

물론 책이 전달해 주는 지식에 비하면 비싸다고 불평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제목만 보고 전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런 실제적인 정책보다는, 자료가 고문서, 즉 지방 사족들의 일기이다 보니 당시를 살아낸 양반들의 실제 생활이 중심이다.

그래서 선명한 제목과는 달리 딱히 왜란 극복 과정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중앙 관료로 활약한 정치가들이 아닌 만큼, 지방에서 사족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바로 교육, 즉 강학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서 전후에도 그만큼 위상이 올라가기도 한 듯 한데 구체적인 과정이 나온 것은 아니다.

유명한 의병장들도 있지만 사실은 학자들인데 얼마나 전투력에 도움이 됐을까 싶긴 하다.

마을 사람들의 힘을 한데 모아 저항한다는 의의 정도인가 싶다.

문과는 아니더라도 진사와 생원이 되는 사마시에라도 급제해야 양반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책 속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과거에 도전한다.

물론 학식으로 명망이 높은 유학자들은 처음부터 과거를 보지 않는 경우도 있긴 했다.

<모당일기>를 남긴 손처눌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무려 82세까지 장수했는데, 제자가 200여 명에 달하고 평생을 대구 지역에서 강학하면서 교육에 이바지한다.

이런 분들이 훗날 산림이 되나 싶다.

이 책 중에 재밌는 챕터는 광해군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었다.

보통 광해군이라고 하면, 대명의리를 주장하는 서인 세력에 의해 쫓겨난 비운의 외교 천재, 이런 이미지인데 저자는 아주 맹렬하게 광해군을 비난한다.

외교 정책에 관한 설명은 없고, 광해군 시대에 얼마나 심한 수탈이 있었는지에 포인트를 맞췄다.

영건도감을 만들어 거기에 들어가는 물품을 구하기 위해 전국에 조도관을 보내 백성들을 수탈하고, 실제로 목재 같은 현물이 올라오는데도 받지 않고 전부 방납업자들에게 받도록 해서 무려 10배의 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런 수탈로 군 자체가 무너져 버린 사례들이 나온다.

얼마나 방납의 폐해가 컸으면 그렇게 긁어 모았는데도 반정 때까지 궁을 다 짓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왜 광해군은 궁궐 건립에 몰두했을까?

전후 복구에 힘쓰고 오히려 세금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어야 할텐데 말이다.

폐모살제 역시 극력한 대북 세력이 다른 당파를 조정에서 쓸어 버리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였음을 지적한다.

민심이 떠난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덕일씨 책을 보면, 인조반정 당시 백성들이 이렇게 좋은 시대에 무슨 반정이 일어났나 어안이벙벙 했다는 표현이 실록에 나온다는데 과연 어떤 게 진실인가 싶다.


<오류>

152p

계운궁을 인헌황후로 추숭했다.

-> 인헌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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