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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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 같다.

평전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는 걸까?

저자의 다른 책 <수양제>와 <중국통사>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옹정제>는 정말 이야기책 같다.

옹정제라고 하면 60년 지배에 빛나는 강희제와 건륭제 사이에 끼어 13년 통치한 어쩐지 별로 한 게 없는 느낌의 황제인데 의외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옹정제의 탄탄한 정책 아래 아들 건륭제의 대외정벌이 가능했던 것이다.

비슷한 예인지 모르겠는데 천자의 사명감을 갖고 일중독에 빠진 이 황제를 보니 마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떠올랐다.

아버지 강희제나 아들 건륭제와는 달리 북경 밖으로 유람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오직 자금성 편전에 틀어박혀 일하고 또 일했던 성실함의 대명사인 황제!

정말 매혹적이다.

저자의 평가대로 만기친람에 육체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13년 통치가 최대치였을 것이다.

이 사람도 정조처럼 50대에 과로사 했던 건 아닐까 싶다.

서류왕이라 불렸던 펠리페 2세가 생각나기도 한다.

펠리페 2세는 너무나 세세한 작은 일까지 전부 간섭했기 때문에 오히려 거시적인 시각을 잃었다는 비판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옹정제의 통치 방식은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나 보다.

청나라 황제들이 비교적 유능했던 이유는 이들이 소수민족으로서 거대한 한족을 다스리기 위해 천명을 받았다는 소명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신선하다.

우리 생각으로는 만주족 오랑캐가 중국을 일시적으로 장악한 느낌인데, 생각해 보면 100년도 채 못 간 원나라와 달리 청나라는 그 세 배인 270여 년을 집권했고 오늘날 거대한 중국 판도를 만들어냈으니 대단히 성공적인 봉건왕조였음이 분명하다.

한족의 장자상속제를 따르지 않고 황자 중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을 뽑는다는 경쟁 방식도 실제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장 강희제에게 선택받은 옹정제부터 이렇게 유능했으니 말이다.

앞서 읽은 청나라 역사책에서는 아무리 청조가 대단했어도 결국은 봉건왕조에 불과했고 근대화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던 반면, 이 책에서는 이런 한계에 대해서는 깊이 서술하지 않고 있다.

18세기 초반 황제에게 유럽같은 근대식 지도자를 바라는 게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정조에게 왜 근대화에 실패했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주비유지>라는 옹정제의 문서 코멘트 모음집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지방 관리가 황제에게 보고서를 보내면 거기에 답을 단 것들을 책으로 출판했고 이것을 저자와 학생들이 무려 40여 년 동안 통독하면서 연구했다고 한다.

정말 일본인들의 연구 자세는 대단하다.

그래서 이렇게 흥미진진한 평전이 나오는 모양이다.

명분론에 사로잡힌 조선시대 근엄한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코멘트들이 아주 날카롭고 실제적이라 옹정제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쓸데없는 미사여구 늘어놓지 말고 결론만 말해라, 나는 바쁘다, 따로 가르칠 것 없으니 인사 필요없고 임지로 빨리 내려가라, 너 같은 멍청이는 처음 본다 등등.

정말 재밌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정조어찰이 발견되어 내용을 읽어보면 정조의 불같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으니, 황제들도 매우 개성적인 한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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