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위계승 원리 연구 민족문화 학술총서 60
선석열 지음 / 혜안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 휴관이라 집에 있는 책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알라딘에서 읽으려고 했던 책이라 집에 있어서 놀랬다.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펼쳐 봤더니 밑줄도 그어져 있고 언젠가 읽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거 읽으면서 복잡한 신라 하대 왕들을 정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신라의 세 왕통, 즉 박씨와 석씨가 3세기 무렵 사로국 시기에 병립했었고 그 후 세력이 커진 김씨가 박씨를 이어 왕위에 오르면서 4세기 내물왕 때 하나로 통일됐다는 것이다.

신선한 주장이다.

삼국사기 불신론 내지는 수정론에 대한 얘기는 종종 들어왔는데 단순히 기년을 올리냐 내리냐의 관점이 아니라 박씨 왕통과 석씨 왕통이 순서대로 즉위하지 않고 동시에 존재했다는 주장은 처음 접했다.

이때가 바로 이사금 시기이다.

여러 소국들이 존재할 때 경주의 사로국에서는 유리왕부터 아달라왕까지 박씨가, 인전한 울산의 우시산국에서는 탈해왕부터 흘해왕까지 석씨가 병립했고 세력이 커진 김씨족의 미추왕이 박씨를 밀어내고 아달라왕에 이어서 즉위한다.

석씨 왕통 사이에 미추왕이 끼어 들어간 게 아니라 석씨 왕통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추왕이 박씨 아달라왕에 이어서 즉위했고 그 다음 내물왕 때, 즉 마립간 시기인 5세기에 이 두 왕통이 합해진 것으로 본다.

사로국과 우시산국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두 왕통의 계보를 하나로 섞다 보니 혼란이 생긴 것이다.

근거로 고구려 미4세기에 전진에서 고구려를 방문한 아도가 375년에 신라로 왔다고 하는데 미추왕 때 왔다는 기사가 또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미추왕의 실제 재위 기간이 내물왕의 전반기인 4세기일 거라 추론한다.

 

혜공왕이 시해된 후 즉위한 선덕왕 김양상은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당시 외척의 세력이 강해지자 진골 귀족이 반발해서 김지정의 난이 생기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혈연적으로 가까웠던 김양상이 즉위하게 됐다는 주장은 다른 책에서도 본 바 있다.

보통 효공왕은 헌강왕의 서자로 나오는데, 저자는 효공왕의 어머니가 의명태후로 추존된 것으로 보아 적자인 것으로 생각되고, 돌도 안 된 시점에서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형제들인 정강왕과 진성여왕이 왕위에 올랐고 나이가 들자 양위받았다고 본다.

서자라고 기록된 까닭은, 다음 왕인 신덕왕이 박씨이기 때문에 갑작스런 타성의 왕위계승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조작했다는 것이다.

효공왕의 장인인 예겸은 신덕왕의 어머니와 재혼하여 의부인데 그가 자신의 양자를 아들 없는 효공왕의 사위 자격으로 옹립한 것이다.

느닷없이 박씨가 왕통을 계승한 사례는 특기할 만하다.

저자는 견훤이 경주로 쳐들어와 당시 신라 사람들이 불만을 가졌던 왕위 계승을 바로잡기 위해 경애왕을 살해하고 김씨인 경순왕을 즉위시켰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 의도였을까?

경애왕과 경순왕은 둘 다 헌강왕의 외손이다.

정상적이라면 헌강왕의 아들 효공왕이 자식없이 사망했을 때 큰 사위이자 김씨인 효종, 즉 경순왕의 아버지가 즉위해야 맞지만, 효공왕의 장인인 예겸이 자신의 의붓아들이자 헌강왕의 둘째 사위인 박씨 경명왕을 즉위시켰다고 본다.

합리적인 추론 같긴 한데 딱 떨어지는 증거는 없어 좀더 생각해 볼 문제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20-03-0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몰라도 굉장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사놓았던 것 같은데, 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책이 집에 없네요. 아마 이사하면서 정리를 해버린 것 같아 다시 주문했네요. 단행본으로 더 읽어보고 싶네요.^^

marine 2020-03-07 08:54   좋아요 0 | URL
전 보관함에만 넣어 놓고 도서관에 없어서 책바다에서 빌리려고 했던 책이거든요.
강종훈 교수의 <신라상고사 연구>에서도 삼국사기 기년을 후대로 미뤄야 한다는 수정론을 접한 적 있어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