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 - 일제강점기 한일미술교류
황정수 지음 / 이숲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740페이지에 달하는 너무 두꺼운 분량이라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던 책이다.

그런데 염려와는 다르게 술술 잘 넘어가서 생각보다 빨리 읽었고 내용도 흥미롭다.

저자가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함몰되지 않고 근대화 시기, 특히 일제강점기 때 서양의 화법이 어떻게 한국에 이식됐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무엇보다 제국주의 정책과는 사실 큰 관련이 없었을 일본 예술가들의 역할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해 줘서 읽기가 편했다.

정치인이 문제지 예술가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오히려 그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학교를 나와 화단에서 촉망받는 인재들이었으나 정부의 정책상 조선으로 건너와 오랫동안 주류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자신의 꿈을 제대로 못 펼친, 어찌보면 불운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일본 역시 서양화를 받아들인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일본에서도 상당히 엘리트 계층이었고 이런 인재들이 조선의 근대 교육 시작 시점에 투입되어 우리 화단을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 유망주들을 교육시켰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일본인 화가들 밑에서 회화의 꿈을 키운 조선 학생들이 일본으로 유학가 배우는 시스템이었던 모양이다.

일본인들은 서양, 특히 프랑스 유학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는데 조선인으로서는 도쿄미술대학 입학이 가장 큰 목표였다.

책에서 화가들의 약력을 들을 때 그 학교 나왔나 보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당시에도 도쿄미술대학 입학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징용이 면제됐기 때문에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근대의 화가들은 조선시대 중인 계층이 아니라 사회의 엘리트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김환기의 부인이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기 때문에 일본풍은 없다는 인터뷰에 대해 김영나씨의 책에서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던 부분이 이해가 간다.

근대 회화 자체가 일본의 교육에서 시작하고 거기서 대학 교육을 받았는데 어떻게 영향이 없겠는가.

그리고 문화의 교류와 영향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일본 화가의 이름이 지워져 누가 그린 것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조선 화가 이름으로 둔갑하기까지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일제의 만행을 규탄할 수 있어도 예술은 만국 공통의 보편적인 눈으로 봐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면에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이 책이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인 제자들에 대한 일본 선생들의 헌신과 애틋한 정이 눈물겹다.

야나기 무네요시만 한국의 미를 사랑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도판도 전부 컬러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확실히 산수화도 일본의 신남화는 색채감과 서양의 원근법이나 비례감이 더해져 우리 정서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서양화의 수채화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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