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 문화는 어떻게 인간의 진화를 주도하며 우리를 더 영리하게 만들어왔는가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5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라 지루할까 봐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이었고, 긴 복문으로 이어지는 번역투의 문장들 때문에 가독성이 다소 떨어져 좀 힘들게 읽었다.

요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매끄러운 한국어 문장으로의 번역이 내용 전달에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실험적 증거들은 다소 어려워 건너 뛰기도 했다.

책의 핵심은 문화-유전자의 공진화이다.

진화심리학이라고 하면 인종차별 내지는 남녀차별이 먼저 생각나는데 이것이야 말로 유전학을 잘못 이해한 일종의 유사과학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근본적으로 매우 단일한 종이지만, 여러 민족들이 속한 공동체의 사회규범과 문화적 관습에 의해 다른 심리 기제와 행동양식을 발전시켜 왔고,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발생한다.

유전학과 생물학을 혼동하면 안 될 것 같다.

문화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는 종래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문화-유전자 공진화의 관점에서 반박한다.

과학적 주장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인간은 문화적인 종이고 이것이 우리를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생명체로 만들었다.

문화적 종의 가장 큰 특성은 집단두뇌와 상호협력이다.

뛰어난 개인이 있다 해도 혼자서 혁신을 계속 이뤄낼 수 없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 있고 성공한 사람을 모방하면서 그들의 뛰어난 지식을 습득하고 개인적 경험과 재조합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 낸다.

요컨대 한 집단이 쌓아 올린 집단 두뇌를 모방을 통해 잘 습득한 후에 비로소 또다른 혁신이 가능하고 그것이 종 번식에 유용하다면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는 것이다.

문화의 핵심은 바로 누적 진화에 있겠다.

집단을 이루고 살려면 사회규범이 필요한데 이기적인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상호협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호혜의 의무를 내제화된 본능으로 설명한다.

내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사회규범으로 억압하여 상호협력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게끔 진화해 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도덕이나 양심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판단력이 종의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내제화된 본능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언어는 인간의 성공에 오히려 부차적인 요소이고 서로 협력하는 과정이 먼저이고 자연스럽게 언어가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앞서 읽은 <크로마뇽인>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이유 중 하나가 언어가 발달하지 못해 문화적 노하우를 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는데 이 부분이 흥미롭다.

음성 언어가 발달해서 사회적으로 협력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본성이 언어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남성이 여러 아내를 거느리게 해 왔음에도 오늘날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은 것은, 아내를 구하지 못한 남성들의 공격적인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폭력적 성향이 증가되어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자연스러운 진화 방향이었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가 강제로 정한 것이 아니라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안정적인 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그러한 배타적인 짝짓기를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일부일처제가 본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매우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꺼운 책이고 번역서라 가독성이 다소 떨어졌지만 문화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물이 아니라, 우리의 매우 핵심적인 본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다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집단에 함몰되어 사회규범을 지키는 것보다 좀더 개인의 가치와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어떻게 사회와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