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마 마스터피스 - 뉴욕 현대미술관의 회화와 조소
앤 템킨 엮음, 강나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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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구입해 놓고 미뤄뒀던 책이다.

5만원이라는 책값을 충분히 하는, 정말 좋은 화집이다.

"MoMA 하이라이트"에는 작품 해설이 같이 있는데, 이 책은 말 그대로 화집이라 작가 이름과 제목만 있다.

해설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현대 미술의 특성상 작품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쪽이 더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다.

현대 미술은 모방을 넘어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미학적 개념을 풀어내는 것 같다.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지만 자주 보다 보니 조금씩 낯선 미학에 익숙해지는 기분이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지만,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사회와 큐레이터들이 끊임없이 작품을 후원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서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인상깊게 읽었다.

현재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더라도 미래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작품을 구매해야 하는 큐레이터들의 미학적 고민이 느껴진다.

앞부분의 화가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 모던 아트라 그래도 좀 감상할 만 했는데 뒷쪽의 동시대 미술은 여전히 난해하다.

그나마 들어본 적이 있는 작가들만 관심있게 봤고 처음 접하는 낯선 작가들의 작품은 솔직히 미학적 감동이 없어 어려웠다.

차이 궈 치앙의 설치미술 정도나 마음에 와 닿을까.

현대미술은 대중보다 훨씬 빨리 앞서 가는 엘리트적 영역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자주 접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뉴욕 현대미술관이라 그런지 아니면 현대미술을 미국이 주도해 가서 그런지 미국 작가들이 많고 중남미 작가들도 꽤 소개되어 신선했다.

의외로 흑인 작가들이 많아 신기했다.

자본주의는 이 모든 기괴하고 난해한 작품들을 다 예술의 영역으로 품어 안을 수 있어 더욱 발전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작품집이 많이 번역되면 좋겠다.

표지는 정말 아름답다!



<인상깊은 구절>

9p

1929년 설립 당시 설립자가 품었던 신념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그 어떤 지난날의 미술과 비교하더라도 그 훌륭함을 겨룰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과 그 이전 시대 미술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시각 언어의 다양성일 것이다. 현대미술가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만들어내려는 목표를 품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시하는 일이나 전통을 따르는 일보다 예술가 고유의 창의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개성은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에 담긴 작품들 속에 드러나는 예술적 방식과 어휘의 다양성은 일반화할 수 없다. 앞선 세대의 예술가들이 이룬 것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예술가들 공동의 맹세를 달성하고도 한참 더 나아갈 정도로 말이다.

11p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닮게 묘사하는 것은 대체로 중요하지 않고 구상적인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확신이 창작의 바탕이라는 현대미술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관객들도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도 - 흰색에 흰색> 같은 난해한 순수추상 앞에선 혼돈에 빠졌다. 미술 작품이라면 의례히 미술적 기교를 증명해 보이리라는 사람들의 기대는 번번히 깨어졌다.

 때로 알프레드 H.바 2세의 앞서가는 안목은 모마 이사단 다수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경우 그는 우회적인 경로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모마 컬렉션에 포함시켰다.

13p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특정 시기의 미술에 관해 공통적인 의견이 형성되는 것은 창작 후 20~30년이 지나서인 듯하다. 1990년대에는 모마가 보유한 1960년대의 미국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 작품들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이 드리워졌는데, 그것은 세계적 경향과 궤를 같이하는 일이었다.

16p

작품 선택은 대체로 작가의 커리어에서 자신만의 미술적 어휘가 온전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 중대한 시기의 것을 위주로 하였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현대미술의 만트라를 가슴 속 깊이 품은 작가들은 생애에서 한 번 이상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혁신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에 접근하곤 했다. 그러므로 특히 현대미술에서는 한 작품을 통해 어느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작품의 배치가 완결되지 않고 언제나 진행 중인 이유는 매년 약 50점 이상의 작품이 모마에 새로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으로 인해 수십 년 전에 창작된 작품들에 대한 해석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가장 근래에 창작된 작품들은 이 책 앞쪽에 담긴, 시간을 통해 가치를 증명받은 작품들처럼 상징적인 위치를 얻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 수도 있다)

 모마 컬렉션을 연대순으로 기록해온 사람은 미술사의 미래는 우리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오늘날 고전이라고 불리는, 또는 당연히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작품들도 처음 모마 컬렉션에 포함시킬 당시에는 아주 대범한 선택이거나, 확신할 수 없는 선택인 경우가 많았다. ... 최근에 취득한 이 작품은 아직은 20년, 30년 후에 중대한 위치를 차지할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는 눈이 변하면서 언젠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과 번뜩이는 지성은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종 그러하듯이, 우리는 작품이 언젠가 지니게 될 역사적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알지 못하면서도 그 작품을 선택한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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