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김상봉씨의 전작 "학벌사회"를 무척 재밌게 읽었던지라 이번 책도 굉장한 기대를 했다
이 사람은 논리가 무척 정연해서, 강준만의 "서울대 죽이기"가 여론에 대한 환기 정도였다면, "학벌사회"는 서울대 망국론의 실체를 학문적으로 파헤친 느낌을 준다
그렇게 본다면 강준만씨 책은 요즘은 지나치게 가볍지 않나 싶다
학자적인 글쓰기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학벌사회"에서 느꼈던 카타르시스, 말하자면 완벽한 논리성에서 혀를 내둘렀던 그런 일목요연함 같은 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일단 철학적인 문제가 많고 주제 자체가 워낙 구체적이지 못하고 형이상학적인 탓에 꽤나 힘들게 읽고 있다
한 번에 쭉 나가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지루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어쩌면 쓰잘데기 없는 관념론의 유희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마저 했다
집중도가 높은 책은, 말하자면 응집력이 뛰어난 책은 그 수준과는 관계없이 한 번에 쭉 읽어나갈 수가 있다
독자의 독서 수준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제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솔직히 좀 지루하다

칸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무척 신선했다
칸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였더라?
기껏해야 정해진 시간에 산책 나갔다는 에피소드 정도?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어디서 주어들은 책 이름 정도?
18세기의 꼬장꼬장한 독신주의 철학자?
칸트가 얘기한 그 준칙이라는 거, 커피 이름으로 알고 있던 Maxime이 대체 뭔지 이번에 좀 알게 됐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때 배웠던 국민윤리는 대체 뭐였는지 모르겠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 나무 심겠다는 안경사 정도로 알고 있고 (평생 안경 만들면서 철학을 했다고 함, 강유원이 그러더라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저 독배 마시고 죽은 사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학교 수업 시간에 주어들은 정도 외에는, 그 사람들이 뭔 얘기를 하고 다녔는지 비슷한 그림조차 못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수업이 수동적인 지식 전달, 그것도 외형적인 것만 피상적으로 가르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관심없이 타율적으로, 강제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주입시키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다시금 느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가지려면 강제적이고 지루한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학생들의 환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애를 썼으면 좋겠다
문득 또 "희망의 인문학" 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적절한 관심만 유발시킬 수 있다면 정말 누구든지 인문학에 대해 기꺼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수법의 습득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 책은 도덕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을 하게 만들었다
한 권의 책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독서를 통한 최고의 소득이 되겠지만 사실 책 한 권으로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일테고, 약간의 환기 정도만 되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도덕이라고 하면 그저 예절 교육, 착하게 사는 것, 공동체 정신, 희생 기껏해야 이런 것 밖에는 몰랐다
오히려 국민윤리가 도덕의 상위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중학교 때는 도덕을 배우고, 고등학교 때는 국민윤리를 배우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국민윤리라는 말 자체가 좀 웃긴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국민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해 가고 있으니 차라리 시민윤리라면 모를까
철학이라고 교과목 제목을 바꾸면 좀 더 학문의 취지를 분명히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국가주의, 파시즘, 애국심의 강요, 민족주의 이런 단어들은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만큼 싫다
그래서 동북아 공정에 대한 우리들의 대응도 함께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똑같은 논리처럼 보이니까

아프리카 난민을 돕자고 하면 북한 어린이나 도우라는 식으로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북한 어린이는 커녕, 구세군 냄비에 동전 한 잎 넣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일 게 분명하기 때문에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대응논리를 생각해 냈다
저자가 말하는 도덕이란 보편적인 의지에 적합한 개인의 규범 정립이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자유로운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고, 그 의지가 보편적인 의지에 적합할 때 비로소 진짜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프리카 난민과 북한 어린이를 가른다는 것부터가 매우 협소하고 자국민중심주의적인 편협한 소견이다
물론 아직은 국가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고 어쩌면 아나키즘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막연한 뜬구름 같은 얘기일 수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그렇다 할지라도 적어도 일상적인 시민 생활의 범위 내에서는 전인류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면 인종주의 따위의 끔찍한 편견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또 그런 의미로 미국 역시 이민 제한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활발한 이민 유입이야 말로 어쩌면 진짜 지구촌이 되어 가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보편적인 의지로 보자면 자국민의 역사적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를 왜곡하는 일 따위도 매우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북아 공정에 대한 우리측 대응법도 똑같이 싫어진다
광개토 대왕보다 알렉산더를 더 위대하게 느끼고 자랑스러워 한다고 해서 과연 그 사람이 서구 제국주의에 사로잡힌 비주체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보편적인 의지로 보자면 즉,인류라는 거대한 틀로 보자면 국가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세계시민의식, 혹은 보편적 의지의 확장이야 말로 어쩌면 도덕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장 큰 목표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게 말한다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국가의 틀에 갇혀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좀 더 넓게 생각해도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인종주의 같은 절대악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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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좀 어려우셨나 봅니다. :)
아무래도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와서 편하게 읽히진 않지요.

marine 2007-05-2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아프락사스님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리뷰가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