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데라야마 슈지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마고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청승맞게도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엉엉 울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구구절절 훌륭한 말씀만 하실까?
남루한 우리 인생, 누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초라하고 비루할 수 밖에 없는 가엾은 삶의 단면을 참 잘도 묘사해 놨다
저자의 그 번뜩이는 관찰력과 냉소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은희경류의 자조적인 냉소와는 격이 다른, 뭐랄까?
좀 더 발랄하고 좀 더 긍정적이지만 결국은 인생의 초라한 이면을 남김없이 까발린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그런 글들이다
저자가 탐닉한 경마, 카드 같은 노름판에 애착이 생긴다
워낙 도박 같은 걸 싫어하고 심지어 그 흔한 로또 복권마저도 사 본 일이 없는 성격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왠지 그런 노름이나 도박에도 괜시리 정이 가게 된다
특히 경마에 대한 저자의 애착은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도쿄 경마 대회에서 한물 간 말들이 지방으로 팔려 가 하찮은 대우를 받으며 지나간 영광을 쓸쓸히 회상한다는 저자의 글을 보고, 지방경마대회 주자가 반론의 글을 썼다
경주마는 원래 달리는 게 천성이고 지방 대회 역시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주최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그런 동정 따위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지방 경마 주자의 그 자부심 가득한 편지에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고 나 역시 지방문화에 대한 편견을 수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말 뿐 아니라 사람 역시 타고난 혈통, 타고난 품격, 타고난 외모나 머리 같은 선천적인 것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우열이 가려지는 것이고,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은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조잡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민중이니 평등이니 하는 것보다 결국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적자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소시민의 비루함을 떨치려면 "일점호화주의"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말도 재밌는 "일점호화주의"란 자기가 애착을 느끼는 한 분야에 올인하라는 것이다
한 달 굶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사흘 식사를 한다거나, 바퀴벌레 나오는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차는 최고급으로 탄다
한 때 머리 빈 족속이라고 비웃었던 이른바 명품족, 한 달 라면 먹고 구찌 가방 사는 식의 여자들도 어쩌면 이런 "일점호화주의" 를 실천하는 이들인지도 모르겠다
벌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고 이것저것 따지면서 분배하다 보면 결국 그 날이 그 날인 뻔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저자의 말처럼 비루한 삶을 벗어나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올인하면서 그것만은 폼나게 살아 버리는 거다
물론 나 같은 소시민은 절대 할 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불가능 할 것이고 저자와 같은 예술적 끼가 다분한 이들만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심혜진이 까페 가수로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녀의 상대역은 착실한 감우성, 전기회사의 a/s 직원이다
버는대로 써버리는 심혜진은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돈 없으면 없는대로 버티고 있으면 폼나게 써 버리는 거라고 말한다
월급 받아 저축하고 아끼면서 사는 평범한 감우성 스타일의 남자가 감당할 수 없는 여자인 셈이다
그 때는 정말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능력이 고만고만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드라마 속의 심혜진 같은 스타일, 혹은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일점호화주의"가 조금이라도 인생의 비루함을 더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올인하는 건 뭐가 있을까?
기껏해야 책?
그것마저 소유하는 것에는 큰 욕심이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게 반은 작용한다
물론 남에게 선행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간단히 말하면 가족 이기주의다
내 가족에게 잘하고 싶은 것, 아마 대부분의 소시민이 그런 의미로 열심히 돈을 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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