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 프랑스 혁명기의 다비드부터 자본주의 시대의 반 고흐까지
이동섭 지음 / 지식서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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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준비하느라 비슷한 책들을 많이 읽어 큰 기대 없기 고른 책인데, 기대보다 훨씬 괜찮았다.

저자가 파리에서 석박사까지 마친 미학 전공자여서 그런지 기술하는 수준이 다르다.

파리 여행 전에 읽으면 프랑스 근현대사를 미술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아쉬운 점은 도판이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지만, 명작 도판의 선명도는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모양이다.

출판사 나름의 노하우나 정성이 필요한 것인지, 여태껏 봐 온 책들 중에서 학고재와 민음사, 마로니에 북스 정도가 괜찮았고 그 외 대부분의 출판사는 표지나 그럴 듯하지 본문의 도판들로는 감상이 어려운 수준이다.

이 책도 본문의 내용은 괜찮은데 도판이 너무 어둡다.

다행히 본문에 언급된 그림들은 거의 실려 있고 새로운 작품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워낙 유명해서 거의 알려진 내용이었으나 마지막에 실린 루소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일종의 일요화가인 셈인데 오늘날 당당히 오르세 미술관에 한 방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니 그 창의성이 결국 인정받은 셈이다.

소박파라고 약간 무시하는 어감이 드는데, 전문적 교육을 안 받은 건 고갱도 마찬가지였는데도 종합주의를 이끈 시대의 선구자가 됐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인상깊은 구절>

154p

"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쿠르베의 말은, 모든 그림에는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의미이자, 사실주의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라는 완전히 다른 '제3계급'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확신의 의미다. 

180p

이로써 회화의 아름다움은 현실을 그림으로 감상하던 재현미에서, 현실을 형태와 색채로 재해석해낸 조형미로 넘어갔다. 그림은 글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더 이상 아니었다. 입체의 현실을 평면의 캔버스에서 입체처럼 보이게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회화에서 중요했던 것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마네의 또다른 근대적 면모다.

208p

"나는 일체의 즉흥성을 배제한다. 내 그림은 오로지 관찰과 옛 거장들의 작품을 학습한 결과."

드가의 저 말에서 핵심은 눈을 사로잡는 즉흥성보다 현실을 관찰하여 얻은 분석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말한 옛 거장, 즉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특징이다. 

293p

비록 그들은 가난한고 고된 일상을 살아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휴일은 마음껏 즐기고 있다. 당시 마흔에 가까운 나이의 자신도 모아둔 돈이 없을뿐더러, 그림을 팔아 돈이 생기면 모두 써버렸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만큼 일하고 가볍게 사는 태도를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후원자였던 사르팡티에 부부의 화려한 아파트에 초대되는 걸 즐겼으나, 그와 같은 호화로운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몽마르트 주민 가운데 한 명으로 생각했고, 그들과 어울려 즐겁게 잘 살았다. 훗날에도 르누아르는 몽마르트르 사람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그런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어서 파리 중심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르누아르는 몽마르트르를 아주 도덕적이거나 타락한 곳이 아닌, 노동자들이 사는 평범한 동네로 묘사했다.

325p

사과나 식탁,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화법의 차이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모든 대가가 그러하듯이, 세잔도 평범한 것을 다르게 그렸다.

327p

세잔은 자연의 형태를 버리고, 화가의 감각에 의해 해석한 형태의 자연을 그렸다. 이제 미술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만든 조형의 질서로 재해석되었다. 마네로부터 시작된 꿈이 세잔에게서 이뤄진 셈이다. 세잔으로 인하여, 화가는 세상을 자신의 관점대로 해석하고 창조하는 새로운 종류의 절대자 위치에 올랐다. 세잔은 미술을가를 미술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현대 회화의 아버지로 기록되었다.

354p

반 고흐도 인상주의자처럼, 자연을 색채 현상으로 보았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했다. 마네와 모네 이후로 더 이상 회화에서 대상의 닮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상에서 비롯한 인상과 느낌을 어떻게 독창적인 스타일로 풀어낼 것인가에 화가들은 집중했다. 엑상프로방스의 세잔은 형태로 인상주의를 극복해나가고 있었고, 아를의 반 고흐는 원색의 새로운 결합 방식으로 모네를 넘어서려 했다.

365p

초창기 자본주의를 살았던 19세기 예술가들은 완전히 달라진 사회에 적응해야만 했다. 공화정이 시작되면서 예술가들은 그동안 그들의 강력한 경제적 기반이었던 왕정과 귀족 등의 후원자를 잃게 되었지만, 화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 과연 누가 화가들의 그림을 사줄 것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화가는 창작과 판매라는 까다로운 두 질문을 동시에 풀어야만 했다.

 반 고흐가 활동했던 19세기 예술가들의 가장 큰 딜레마는 시장의 헤게모니였다. 그림의 제작자이자 판매자인 그들은,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수 없었다. 시장이 없다면 그림을 팔 가능성이 아예 차단되니, 시장은 필요했으나 시장의 논리를 거부해야 하는 이중성을 감내해야 했다. 

 돈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삶일 것이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바람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초기 자본주의를 살았던 반 고흐의 고난이 지금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프랑스 혁명으로 안착된 공화정은 결국 부르주아지를 위한 사회였고, 그들의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어긋난 사람들은 쓸모없는 존재들로 처벌당했다.

373p

그는 그림을 독학으로 깨우쳤다. 아마추어 화가로 불리는 이유이자, 생의 후반부까지 그의 그림에 조롱과 멸시가 따라붙은 이유다. 가난한 독학자였기에 루소는 오랫동안 무명 화가였고, 가난한 처지에 왜 돈 들여 그림을 그리냐는 주위의 비아냥과 비싼 취미 생활이라는 몰이해를 견뎌야 했다. 다르게 보자면, 루소는 세관에서 번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취미로 틈틈이 그림을 그리던 보통 사람인데,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자신의 방을 가진 놀라운 화가다.

 루소의 이런 고립된 처지가 그림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혼자 보고, 혼자 평가하고, 혼자 그리는 과정에서 미숙함을 수정하지 않은 채 미숙한 상태에서 완성도를 높였다.

386p

언론을 통해 부유층의 다양한 문화 활동이 소개되면서 노동자와 중산층은 그와 유사한 것을 소비함으로써 대리 만족했다. 즉 부자들은 배를 타고 머나먼 이국으로 여행을 갔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을 보거나, 원숭이 같은 동물을 길렀다. 현실에서 직접 이루지 못하는 것의 대체물로서 루소의 그림은 아주 유효했다. 소재(밀림)와 화법(소박)의 결합으로 전형적으로 잘 그린 그림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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