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예술에 미치다 - 무색미학으로 본 한국인의 미의식
전기열 지음 / 아트북스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도자기, 특히 조선 백자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는 고려 시대 청자를 만들던 훌륭한 기술이 조선 건국 직전 혼란한 상황을 거치면서 맥이 끊겨 더이상 만들이 못하고 분청사기와 백자로 돌아섰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자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고려와 조선은 추구하는 미학과 감성이 달랐기 때문에 선호하는 그릇의 형태도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단 도자기 뿐이 아니라 조선은 사치를 배격하고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담박한 미학의 사대부 취향의 문화를 추구했던 듯 하다.

요컨대 화려한 고려청자 보다는 단아하고 자극적이지 않는, 이 책의 저자의 표현대로 튀지 않는 색감의 중간색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조선 백자의 단순미, 소박미, 자연스러움 등에 공감이 가고 비단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 같은 하층민 뿐 아니라 나라를 이끌어 가는 상층의 사대부들이 추구하는 미학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일본의 일기일회, 다선일미 문화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왜 일본에서 이도다완 같은 평범한 막사발을 국보로 숭앙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아 그렇구나 무릎이 쳐진다.

조잡한 그릇에 와비의 정신을 구현해 가치를 만드는 차인을 통해 그 미학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은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린 것이고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미학은 없는 것일까?

솔직히 저자의 백자 예찬론에 공감이 가면서도 중국 도자기를 낮게 보는듯한 발언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중국 도자기를 접할 기회가 없어 잘 몰랐는데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펴낸 중국도자도록을 보고 정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비단 중국 도자기 뿐 아니라 유럽 도자기 등도 그 놀라운 형태미와 색채감, 세련됨에 정말 감탄했다.

비교 설명은 이해를 돕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에는 나름의 철학과 미학이 베어 있을테니 다른 문화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조선 도공이 이름을 남기지 않는 것을 두고 허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하던데 이 문장에도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저자가 앞에서 설명한대로 조선 사회에서는 공예품이나 예술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이름을 남긴다는 의식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이 오늘날 조선 백자가 전통문화에 함몰되어 실생활에서 생명력을 얻지 못하고 박물관의 유물로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조선 백자가 평등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구현했다는 말도 공감이 어려웠다.

조선이야말로 신분질서를 예로써 표현하는 사대부들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오히려 무애심이라는 표현이 더 공감된다.

저자가 다완이나 자기를 단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실생활에서 직접 사용하면서 그 멋과 맛을 음미하는 점도 인상깊다.

저자의 표현대로 원래 우리 자기는 감상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실생활에서 사용할 때 가치가 배가될 듯 하다.

마지막 장에서 자신이 소유한 여러 자기들을 소개하면서 품평한 것도 인상깊게 읽었다.

자신만의 애장품에 대해 이렇게 깊은 철학을 가지고 음미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수집가는 얼마나 행복한가.


<인상깊은 구절>

65p

동양의 화가들은 오래전부터 여백을 편재하는 氣의 표상으로 여겨왔다. 편재는 '두루 遍'자, '있을 在'자를 쓰는데, 말하자면 널리 퍼져 있음을 뜻한다. 위아래, 동서남북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함을 의미한다. 바로 이 '두루 존재함'에서 여백은 중국의 화가들이 산수를 그릴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산수의 '기상'을 표현한 의도적 장치로 사용했다. 이 시기의 여백은 한 방울의 먹을 사용함에도 심사숙고하는 惜墨이나 사물의 본바탕을 간결한 필치로 그려내는 동양화 화법 가운데 하나인 減筆과 더불어 표현 억제의 의미로도 쓰였다.

105p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원색 계통의 화려하고 강렬한, 즉 눈을 자극하는 색상 사용은 무척 꺼린다. 색깔 종류는 다양하게 구사하지만 거의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중간색 계통만을 쓴다. 

137p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사회의 '이치고이치에 一期一會' 문화는 다선일미의 진리를 실천하는 문화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만남이나 헤어짐에 있어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불편할 정도로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습성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그것이 친절심에 나온 것이 아니라 이치고이치에 정신의 직접적인 발현임을 알 수 있다. "본래 다도의 모임은 이치고이치에라고 해서, 여러 번 같은 주객이 서로 만났다 하더라도 오늘 모임은 일생에 단 한번뿐인 만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다도 모임의 정신을 풀이하고 있다. 이 정신에 의해 일본인은 매번 눈이 마주치는 순간마저 생애에 단 한번뿐인 만남이라 여겨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하는 것이다.

141p

우리 생각에는 일본 차인이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다완이고, 와비차의 핵심 매개체라는 점에서 오오이도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가 않다. 즉 차와 와비의 미를 모르는 조선시대 초기의 이름도 알 수 없는 도공이 만든 그릇을, 차와 와비의 미를 알고 있는 일본 차인이 그 조잡함을 발견하고 그냥 취했다고 본다.

 우리는 여기서 이에 대해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오이도를 우리 선조가 만든 것이란 이유로 민족적 우월감 내지는 자족감에 들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와비차는 본래 그렇게 시작한다. 정말 보잘것없는 것에서부터 도구를 찾는다. ... 오오이도는 조선에서 만든 조잡한 그릇이지만 일본의 차인이 가치를 추구하는 다완으로 채용함을써 훌륭한 그릇이 되었다. 만약 그 그릇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면 어찌 될까? 다시 조잡한 조선의 사발이 된다

 미의식에 불교를 담은 와비관은 다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초라한 누옥이지만 그 속에서 차회가 열릴 때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치 충만한 공간이 된다. 와비차의 다실에서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귀하고 천한 신분에 상관없이 니지리구치를 통해 낮은 자세로 기어들어 갈 수밖에 없다.

145p

일본인의 미관은 그야말로 내용이 충실하면서도 품격까지 갖추었다. 이민족의 그릇에서 자기 민족의 가치관을 찾아낼 줄 아는 혜안을 지닌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술을 스스럼없이 사랑하고 존경할 줄 아는 미덕도 갖추었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조선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민족은 정작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 아닐까 싶다.

166p

우리 민족은 본래 다른 민족과 달리 고미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했다. 전래 유물이 극히 드물다는 것은 유물의 가치 인식에 대한 역사가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일본인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조상의 유물에 대한 가치가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보물이 되고, 환금성이 생기면서 전국에 골동성이 우후죽순으로 들끓었다.

229p

가령 차 문화에 지도적 입장에 있는 차 선생이나 사기장은 녹차와 다완을 매개로 하여 우리 차 문화가 고급 전통문화라 자랑하기를 좋아하나, 나는 그들이 왜 우리 민족이 녹차의 맛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다완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매개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관도, 미관도 부재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전통만을 강조한 격이다. 일본 다도는 가치관과 행다법을 통해 깨달음에 들어서는 고급 정신 문화로서 굳건히 전통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차 문화에는 도무지 이렇다 할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다. 굳이 평하자면, 그저 차맛을 음미하고 차맛의 깊이를 논하는 樂 정도라 할까. 조선시대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유희 수준에 머문 것이라 하겠는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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