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용 -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사이언스 클래식 6
칼 세이건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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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칼 세이건이라고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을 매우 지루하게 읽은 데 비해, "에필로그" 나 "에덴의 용" 등은 퍽 재밌게 읽었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것, 과학 저술가들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싶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이 안 잡혔었다
얼핏 생각하기에, 진화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역시 생물학에서 진화가 빠질 수 없는 핵심임은 분명한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뇌에 관한 내용이다
역자가 우려한 대로 3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 최신 뇌의학의 성과를 따라잡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또 역자가 성실하게 주석을 달아준 덕분에 많이 보완이 됐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책에서 읽은 것은 느낌이 참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신분열증 중에 파과형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완전히 미치광이를 뜻한다
그런데 대체 파과가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이 안 잡혔고 심지어 파괴형을 잘못 썼다고 이해하기까지 했다
나처럼 생각하는 필자가 있었는지 어떤 책에는 정말 파괴형이라고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뜻을 알았다
破瓜란 오이를 깨뜨린다는 뜻으로, 오이 瓜 를 쪼개면 여덟 八자가 두 번 나오니, 곧 이 팔 청춘, 십 육세를 뜻한다고 한다
여자가 성교를 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파과란 사춘기 혹은 청춘을 의미하는 단어다
영어로는 hebephrenic인데, hebe는 사춘기라는 뜻이고 phrenic은 mental 즉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파과형 혹은hebephrenic은 사춘기적 특성, 곧 질풍노도의 시기와 비슷한 정도의 날뛰는 감성 같은 걸 의미한다
hebe가 사춘기를 뜻하는 이유도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
이런 의미를 모르고 무조건 외웠으니 공부가 즐거웠을 리 없다
사지를 의미하는 limb이라는 뜻도 바로 주변부라는 것을 알았다
몸통에 비하면 팔다리는 주변부인 셈이다
또 limbic system 즉 변연부의 의미가 중뇌에 비하면 주변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팔다리를 의미하는 limb과 뇌 속의 limbic system이 같은 의미였다
이런 걸 알게 될 때마다 동양인이 서양의 학문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단어의 뉘앙스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 연세대학교 내과 교수를 하다가 제약회사의 이사로 스카웃 된 여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공부하는 게 너무 즐거워 줄창 공부만 하다가 졸업을 했다고 한다
이제 보니 아마도 그녀는 의학의 이런 세부적인 곳에서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핵심 내용은, 뇌가 진화해 왔다는 데 있다
내가 항상 궁금해 했던 것이 바로 동물들도 감정이 있는가이다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면서 애정을 쏟고 있는데 과연 이 강아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저 인간 혼자서 자기만의 관점에서 애정을 퍼붓고 있는 건 아닐까?
말하자면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 방식으로 말이다
만약 개가 인간과 감정 교류를 한다면, 다른 동물은?
토끼는? 개구리는? 어디까지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걸까?
세이건은 변연계에서 정서를 관여하므로 변연계가 발달한 포유류와 조류까지로 본다
뇌도 진화를 거치는데 가장 기본적인 구조가 뇌간이나 척수 등과 같은 신경 지지대다
척추동물의 가장 아랫층을 형성하는 어류를 생각하면 쉽다
그 다음이 좀 더 발달한 구조로 중뇌를 포함한 R-복합체이다
아마도 파충류의 뇌란 뜻으로 R-복합체라고 이름붙인 것 같다
그 다음이 시상, 시상하부, 편도, 뇌하수체, 해마 등을 포함한 변연계다
바로 이 부위에서 감정이나 애정, 단기 기억 등을 관장한다
양서류까지는 변연계가 없는데 비해, 파충류는 약한 정도의 변연계 기능을 갖고, 조류부터는 확실하게 있다고 한다
R-복합체가 성적 본능이나 공격성, 위계 질서, 관습 등을 관장하는데 비해 변연계는 기억, 공포, 정서, 이타적 행위 등을 조절한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성행위와 과시 욕구의 관계다
내가 항상 의문시 했던 점이 바로 이건데, 영화에서 보면 오르가즘에 도달한 남자들이 욕을 해댄다
미국 영화에서는 Fuck you를 외치고, 한국 영화에서는 씨발이라고 중얼거린다
특히 자위 행위할 때 이런 욕을 많이 쓴다
성적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기분이 그만큼 최고에 달한 건데 대체 왜 욕을 하는지 좀 의아했었다
그런데 세이건이 이것들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준다
fuck이 원래 찌르다라는 게르만어에서 나온 단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fuck you는 너를 찌르겠다, 혹은 너를 공격하겠다, 지배하겠다, 이런 성행위나 지배 본능과도 연결된 단어라는 뜻이다
다람쥐원숭이는 무리들 앞에서 발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서열을 과시한다
부풀어 오른 음경을 보여 주는 것이, 성행위를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이만큼 강하다, 혹은 너희를 지배한다 이런 의미라고 한다
성욕과 위계 질서, 영토 본능, 공격 욕구 등이 모두 R-복합체라고 부르는 부위에서 관장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성행위를 할 때 욕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다른 해석도 있겠지만 나는 오랜 숙제를 푼 기분이다

 

변연계보다 더 진화한 뇌의 형태가 바로 신피질이다
인간의 이마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에 비해 튀어나온 이유도 바로 이 신피질 더 정확히는 전두엽 때문이다
전두엽은 사고를 관장하는 중추다
특히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해 주는 중요한 기능인 예측하기과 계획 세우기를 가능케 한다
미래를 예상하기 때문에 불안이라는 감정도 생기고 앞으로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도 세울 수 있다
두정엽은 몸의 내제적인 감각이나 (이를테면 위치감각) 공간 감각을 담당하고, 귀 쪽에 위치한 측두엽은 여러 지각, 특히 언어 쪽을 담당하며, 뒷쪽에 위치한 후두엽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을 맡는다
재밌는 건, 양서류는 단지 망막에서 사물을 인지한다고 한다
반면 인간의 눈은 물체를 받아들인 후 후두엽에서 해석한 후 그것을 인지한다
읽기와 쓰기 같은 상징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다 두정엽 덕분이다
이처럼 뇌는 각 영역마다 기능 분화가 되어 있고, 서로 연결되어 겹치는 부분도 많다고 한다

 

뇌의 기능을 지도로 나타낸 그림을 보면, 제일 많은 부위를 차지하는 게 바로 엄지 손가락과 입이다
다른 손가락에 비해 짧고 뭉툭한 이 엄지야 말로 인간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발성기관인 입의 중요성은 곧 언어 사용으로 이어진다
언어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찬미되어 왔지 않은가?
물론 지금은 좀 수정되야겠지만
인간의 언어를 배운 귀여운 침팬지 워셔, 라나, 루시에 관한 얘기가 이어진다
동물도 언어가 있는지, 배울 수 있는지 알아 보려고 실험을 했다
그런데 이들의 입 구조는 언어를 사용하기에 부적합 했다
가드너 부부는 침팬지의 발달된 손의 특성을 이용해 수화를 가르치기고 했다
놀랍게도 이 침팬지들은 200여 단어를 기억하고 심지어 문장까지 만들어 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침팬지도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언어를 쓸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이런 사진이 실렸다
캔디를 주자 침팬지가 달콤하다는 뜻을 수화로 전달한다
수박을 주자 달콤한 음료라는 표시를 한다
watermellon이라는 수박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가?
침팬지의 수화 터득 능력에 관한 책을 보고 싶어진다

 

난 가끔 이런 상상도 한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 네 발로 걷기 때문에 손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는 점이다
손을 쓸 수 있다면 우리의 교감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이를테면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침팬지나 원숭이를 키워 보면 어떨까 싶다
일본에서는 원숭이도 심심치 않게 키우는 것 같던데 왜 이들은 반려동물로 널리 퍼지지 못했을까?
그런데 사춘기가 된 침팬지는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같이 자랄 수 없다고 한다
인간보다 거대 유인원이니까 공격 본능을 제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좀 잔인한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소형견처럼 품종 개량을 하면 안 될까?
아, 내가 미쳤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동물 실험도 금지하자는 마당에 인간과 거의 비슷한 친척뻘인 유인원들에게 이런 잔인한 생각을 품다니...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은 세이건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철창 속에 갇혀 있는 유인원들을 보러 간 그는, 갑자기 침세례를 받는다
거기서 그는, 1920년대 비인간적인 감옥을 소재로 한 (이를테면 알카트라즈 같은) 영화를 떠올린다
인권이란 개념이 무시되고 죄수들은 좁은 철창에 갇힌다
사람이 지나가면 침을 뱉고 욕설을 하고 철창을 두드린다
연구소 안의 유인원들과 똑같지 않은가?
인권의 개념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이제 인간은 물론이고 좀 더 넓은 범위까지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 실험은?
생각하면 한이 없지만 어쨌든 진보나 인권의 개념이 점차 확장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당장 사형제도만 해도 비윤리적인 것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동물원이라는 것도 매우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은 의사과학에 대한 경고로 끝이 난다
역시 세이건 답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적인 면에서 어떻게 이용되느냐는 또다른 문제다
인문학과의 대립 또한 잘못된 비교가 아닐까 싶다
학문의 성격적 차이는 있겠으나 서로 대립되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모두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면 인문학과 과학의 갈등 관계를 유난히 부각시키는 분위기가 좀 불편하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진화야 말로 생명의 기본적인 발전 방향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학교 다닐 때 용불용설은 틀리고 적자생존이 맞다는 얘기를 배웠는데 그 때는 참 이해가 안 갔다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부모 세대와 다른 형질이 전해진다는 건가?
그 비밀이 바로 돌연변이다
학교 다닐 때는 우연히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대체 진화에 얼마나 영향을 끼친다고 돌연변이에 의한 적자생존을 지지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돌연변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 원리임을 새삼 느꼈다
세이건에 따르면 생식세포가 유전될 때 약 10% 정도의 돌연변이가 생기고 이 중 환경에 유리한 쪽이 계속 살아남아 진화된다고 한다
잘못된 돌연변이를 차단하기 위해 몸에서 자체적으로 보수 기능을 하고 유익한 것은 계속 전달된다
그러고 보니 DNA 수준에서 설명될 일이다
유전학이야 말로 최첨단을 달리는 학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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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1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재밌겠다.

marine 2007-01-1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밌어요 꼭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