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외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였을까?
생각만큼 아주 좋지는 않았다
역시 서양 화가가 그린 조선 사람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풍속적인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구별이 되는 느낌이다
우리가 서양 사람들을 그릴 때도, 그들 역시 이런 낯선 느낌을 받을까?

목판화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초등학교 때 고무판에 칼로 그림을 새겨서 찍어냈던 적이 있다
그 때 느낌은, 제대로 뭘 새기도 힘들고 색깔내기는 더더욱 어려워, 판화는 매우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판화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찍어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특히 에칭이라는 작업이 매우 궁금하다
렘브란트의 그림 역시 에칭화로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하는 작업인지 궁금증이 생긴다
칼로 이렇게 세밀한 선들을 일일이 파낼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뒤러도 판화의 대가였다고 하니, 다음에는 판화에 관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어쩔 수 없이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선 여인네들의 가엾은 삶이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수도 있겠으나, 가부장 문화에 억눌리고 천시받았던 여성들의 아픈 삶이 자꾸 눈에 밟혀, 책 내용과는 별개로 마음이 아팠다
신기했던 점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과 중국은 빨래를 남자가 한다고 한다
정말 20세기 초 무렵, 일본과 중국 남자들은 직접 물을 길러 빨래를 했을까?
중국에서는 요리를 할 때 불을 다뤄야 하므로 남자들이 주방일을 한다는 소릴 듣긴 했지만 정말 빨래까지 남자가 하는지 꼭 알아 보고 싶다
엘리자베스 비숍 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이라는 책에서도 나온 바지만, 한국 여성들의 빨래에 대한 부담감은 참으로 엄청났던 것 같다
염료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흰 옷을 입어야 했던 조선인들은, 또 그것을 깨끗하게 빨기 위해 엄청난 노동력을 바쳐야 했다
특히 저자는, 다듬이질이야 말로 끝도 없는 여인네들의 노동이라고 썼다
다듬이 방망이질 소리는 싯구나 수필에서 무조건 아름답게만 묘사되지만, 실제로 그 일을 수행해야 했던 여자들의 고생은, 아마 말로 다 못했을 것이다

의료 환경이 척박했던 점도 참 마음 아프다
현대식 의료가 들어오기 전,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근거없는 미신이나 민간요법에 의존해야 했다
이 책에서도 그 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열 번이나 유산된 여자가 드디어 딸을 출산하게 됐는데, 그 때 회음부 쪽에 상처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러자 마을의 의원이 그 곳을 불로 지지라고 했다
그 가엾은 여자는 회음부 열상을 인두로 지졌고 결국 과다 출혈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다
다행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 딸과 함께 퇴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당시 조선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서양 의료 인력이 어떤 면에서는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겠으나, 이런 미시적인 측면에서는 분명히 큰 혜택을 베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쪽으로 생각하자면 당시 서양인들이 확실히 조선이나 일본에 대해서 우위적인 위치를 점했음은 분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평범한 의사, 화가, 선교사일 뿐인데 선진국, 제국에서 왔다는 이유 만으로 꽤나 높은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민비의 친척도 만나고 김윤식의 집도 방문한다

그런데 확실히 그림은 사진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정감있다
가끔 구한말 흑백 사진들을 보면, 그 안의 인물들이 참 초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흑백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워낙 오래된 사진이라 그렇겠지만 표정도 없고 굉장히 무뚝뚝하고 무엇보다 정다운 느낌이 전혀 없어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림 속의 조선시대 인물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표정이 있다
또 현대적인 느낌도 받는다
서양인이 그려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며, 인물들이 하나같이 키가 커 보인다
같은 시대에 동양인 화가들이 그린 목판화 그림을 보면서 비교해 보고 싶다

그림과 함께 실린 짧은 글을 읽으며 느낀 점은, 저자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사랑했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극동의 가난한 식민지에 대해 연민과 함께 우월감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적어도 그녀가 쓴 글만으로 보면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역시 아프리가의 가난한 나라를 방문할 때,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한 나라의 문화를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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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09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간했을 때 저도 엄청 기대했었던 기억이 나요. 전 교보 가서 잠깐 들춰보았는데 그리고는 사기를 포기했어요^^;;;

marine 2007-01-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봤답니다